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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Feb 01. 2021

아빠는 없는, 모자(母子)의 세계

휴직 277일째, 민성이 D+526

'춥다고 집에만 있으면 안 돼요. 여러분도 저처럼 가끔 밖에 나와서 하나 둘 하나 둘!' / 2021.1.31. 서천 국립생태원


17개월 민성이 역시 엄마 껌딱지다. 분명 껌딱지이긴 한데, 필요할 땐 엄마와 꽤 잘 떨어지는 껌딱지다. 생후 8개월, 아내의 비교적 이른 복직으로 또래 아이들보다 일찍 엄마와 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민성이는 매일 아침 엄마가 출근할 때도 거의 울지 않고, 그녀가 출근 준비를 위해 문을 닫고 안방에 들어가도 (이제는) 나랑 거실에서 이런저런 놀이를 하며 의젓하게 기다린다.


물론 여전히 아내와 내가 나란히 서있으면 그는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아내에게로 달려가지만, 이제는 내가 아내의 대체품(?) 정도는 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아내가 일을 해도 아이를 보는데 큰 불편함은 없다.


하지만 그런 민성이도 엄마 품에서 유독 떨어지지 않으려고 할 때가 있다. 낮에 막 자고 일어났을 때다. 잠을 깔끔하게,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은데 잠을 조금 아쉽게 잤다 싶으면 어김없이 엄마를 찾으며 칭얼거린다.


어제(31일)도 우리 세 가족은 지난 주말에 이어 아침 일찍 국립생태원 나들이를 다녀왔다. 역시 지난 주말에 이어 다리가 풀릴 때까지 뛰어 논 민성이는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자마자 곯아떨어졌다.


1시간 반쯤, 잘 자던 민성이가 일어나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 품에 안겨 다시 잘 자는가 싶더니 이불 위에 눕혀놓기만 하면 울음을 터트렸다. 등 센서가 켜있을 나이는 분명 지났는데. 


민성이도 이제 꽤 무겁다. 팔이 빠지기 직전에, 아내는 민성이를 내 품에 건넸다. 그는 대성통곡했다. 마치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처럼. 결국 아내는 팔이 빠지는 쪽을 선택했다.


아내는 소파에 앉아 민성이를 안고 눈을 감았다. 민성이는 그녀 품에 비스듬하게 안겨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았고, 나는 거실 매트 위에 누워 그런 모자를 지켜보았다. 우리는 몇 분을 그러고 있었다.


잠을 자면 꿈이라는 무의식의 세계가 펼쳐지듯이, 잠이 덜 깬 민성이의 무의식엔 늘 엄마가(혹은 엄마만) 있다. 하긴 둘은 원래 한 몸이었으니. 아빠로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둘의 그 견고한 우주가 가끔 부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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