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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Feb 06. 2021

아내의 외박

휴직 282일째, 민성이 D+531

'인생은 이렇게 웃으며 지내기만도 짧은 걸요.' / 2021.2.5. 부모님 집


어제(5일)는 우리 세 가족이 모두 외박을 했다. 아내는 세종시에 있는 친한 친구 집에서, 나는 민성이을 데리고 부모님 집에서 잤다. 사실 후자는 전자에 따른 것이므로, 중요한 건 아내의 외박이었다.


세종에 사는 아내의 절친은 작가다. 그녀는 고향인 대구에서 부모님과 지내다 최근 독립을 선언하고, 세종에 집을 얻었다. 그녀는 당연히 아내에게도 놀러 오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아내는 쉽게 시간을 내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민성이 때문이다. 내가 다녀오라고, 다녀오라고 해도 그녀는 당최 듣지 않았다. 평일에도 민성이를 많이 못 보는데, 주말에 친구를 만나고 오면 아이는 언제 보냐는 거다.


나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다녀왔을 것 같은데, 어쨌든 그녀는 그러한 이유로 절친 집들이를 계속 미뤄왔다. 그러다 친구 하나 잃지 말고, 민성이는 신경 쓰지 말고 하루 놀다 오라고 내가 종용했다. 그게 어제였다. 


민성이라는 마약에 취해있지만, 매일 반복되는 생활이 답답하기는 그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친구 집에 도착한 그녀는 내게 짤막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고마워 남편.' 얼마 만에 듣는 감사인가. 그녀가 즐거우면 됐다.


생색은 오롯이 나 혼자 냈지만, 고통(?)은 부모님과 사이좋게 분담했다. 민성이 어린이집이 끝나고, 아이 장난감과 옷가지를 챙겨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부모님. 아내의 외박이 부담스럽지 않았던 이유이자, 나의 믿는 구석이었다.


엄마는 없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빠의 3중 보살핌을 받으며 민성이는 즐거운 금요일 저녁을 보냈다. 나도 모처럼 아버지와 저녁에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눴다. 


민성이를 간단히 씻기고 방에 들어오니 7시 반이다. 아이는 졸린 기색이 역력했다. 불 꺼진 방엔 민성이와 나 둘 뿐이었다. 아이는 내 품에 기대 살며시 눈을 감았다.


민성이는 보통 엄마랑 자기 때문에, 이렇게 밤에 둘만 있기도 오랜만이었다. 엄마 없이도 크게 떼쓰지 않고 잘 잠드는 아이가 기특하고 예뻤다. 아내의 외박 덕에, 민성이를 원 없이 안아보았다. 가끔은 이런 시간이 그녀에게도, 내게도 필요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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