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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Feb 07. 2021

설을 앞둔 어느 주말

휴직 283일째, 민성이 D+532

'MS1호, 그쪽 상황은 좀 어떤가. 응답하라, 오버.' / 2021.2.6. 우리 집


민성이를 데리고 집에 오니 아내가 먼저 도착해있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냄새가 코 끝을 찌른다. 아직 점심을 먹지 않은 민성이를 위해, 그녀는 시금치 리소토를 만들고 있었다. 


그제(5일) 저녁, 아내는 세종에 있는 친한 친구 집에서, 나와 민성이는 부모님 집에서 외박을 했다(아내의 외박). 민성이는 엄마 없이도 부모님 집에서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았다.


아내가 면허증을 장롱에서 꺼낸지는 1년도 안 된다. 그녀는 이번에 세종에 가기 위해 처음으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어땠느냐고 물어보니, 돌아올 때 계기판을 보니 시속 180km가 찍혀있더란다. 


그녀가 그렇게 액셀을 밟았던 이유는 뻔하다. 이틀 만에 이루어진 감격스러운 모자 상봉 이후, 언제나 그랬듯 둘은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다. 민성이가 낮잠에 들자, 아내는 콧노래를 부르며 그 옆에 누웠다. 


둘은 1시간 반쯤 잤다. 산발이 된 모자가 푹 잔 얼굴을 하고 방에서 나왔다. 아이 옷을 입힌 뒤 근처 대형 마트로 향했다. 출발하기 전에 냉장고를 한 번 열어본다. 민성이 간식이 텅 비어있다.  


다음 주가 설이라 그런지 마트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진열대엔 온통 설 선물이었다. 나도 서울에 있었으면 명절이 좀 더 애틋했으려나. 민성이 간식을 한 바구니 담아 도망치듯 마트를 빠져나왔다.


민성이 저녁 먹을 때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 곧 설이니,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 미용실 역시 만원이었다. 민성이는 아내 품에서 내가 머리 자르는 걸 지켜봤다. 그래야 아이도 미용실 분위기에 익숙해질 것 같아 일부러 데리고 갔다.


아내의 외박은 잠깐이었다. 우리는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했다. 민성이와 함께 하는 일상은 늘 그렇듯 비슷하다. 하지만 이젠 그런 비슷함이 지루하기보단 편안하다. 어쩌면 내 인생에 다시없을 일상이라는 걸 알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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