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86일째, 민성이 D+535
오랜만에 민성이가 오롯이 내 차지가 되었다. 지난 2주 동안은 아버지가 일을 잠시 쉬어서, 아이 어린이집이 끝나면 매일 부모님 집에 갔었다. 그곳에서 나는 늘 뒷전이었다.
어제(9일)는 엄마가 명절 준비로 바쁘다기에 아이와 둘이 집에 있었다. 엄마는 우리 부자가 오지 않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했다. 하긴, 민성이는 일을 도와주지는 못해도, 뭐든 못하게는 할 수 있다.
민성이가 감기 증세가 있어(갈 듯 가지 않는 겨울, 감기)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퇴근할 때까지 3시간, 오직 아이와 나 둘만의 시간이다.
몇 가지 변화가 눈에 띄었다. 일단 민성이가 혼자 노는 시간이 늘었다. 집에 들어오면 보통 민성이는 장난감이 쌓여있는 거실로, 나는 옷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는다.
예전엔 그것도 쉽지 않았다. 민성이가 가만 놔두질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거실에 없는 걸 알아차리면 곧바로 옷방으로 달려와 빨래 건조대를 쓰러트리거나, 아니면 거실로 나가자고 내 바짓단을 잡아끌곤 했다.
하지만 어제 민성이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편하게 옷을 다 갈아입고, 민성이 어린이집 가방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아이는 거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데에만 집중했다.
민성이는 가끔 내 손을 잡고 그가 원하는 곳으로 날 끌고 가기도 했다. 예컨대 거실에 있다가 옷방에 가서 놀고 싶으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내 손을 움켜쥔 뒤 옷방으로 향하는 식이다.
아이는 또, 어디서 배웠는지 가끔 너털웃음을 짓기도 했다. 어제는 그렇게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이의 새로운 변화를 지켜보기에, 3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느덧 민성이는 날 찾지 않고 혼자서도 제법 놀 수 있게 되었다. 혹시 아빠가 너무 '노잼'이라서 그냥 혼자 노는 게 나은 거라고 판단한 걸까. 아이가 조금씩 날 찾지 않는 게 시원하면서 섭섭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