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88일째, 민성이 D+537
난 부모님과 일찌감치 떨어져 지냈다. 고등학교 1년은 기숙사에 살았고,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상경해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확실히 캥거루족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을 보는 건 늘 즐겁다. 즐거우면서 동시에 애틋한 감정인데, 어쩌다 주말에 한 번, 명절에 한 번 가족이 모일 수 있어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주말이건 명절이건, 가족이 모이면 우리는 저녁에 꼭 술상을 차린다. 그 술상에는 오랜 시간 네 명이 앉아있었는데, 5년 전부터 다섯 명이, 그리고 이제 여섯 명이 되었다.
가족은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근황에 대해, 즐거운 일과 슬픈 일에 대해, 고민에 대해 말하고 듣는다. 추억 여행도 빠지지 않는다. 술상엔 공감과 웃음이, 때로는 진심 어린 조언이 넘쳐난다.
어제(12일)도 어김없이 우리는 술상에 모였다. 오전 내 부모님과 동생이 쟁반 가득 부쳐낸 부침개에 요즘 나의 '최애' 주(酒)인 소곡주를 꺼냈다.
물론 최근 우리 가족에 합류한 17개월 막둥이는 얌전히 앉아있지 않았다. 그의 횡포에 혹시나 잔이 바닥에 떨어질까 마음 졸이며 술을 홀짝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성이는 뜬금없이 귤껍질을 집어 들더니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귤껍질을 옮겨놓으며 한참을 놀았다. 덕분에 우리는 마음 놓고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동생의 새 부서, 결혼 준비, 내 육아 고충, 민성이 성격 분석, 부모님 연애사, 가족 여행 계획 등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1시다. 시간 '순삭'이다.
험한 세상살이에 가족은 한결같은 우군이자 든든한 지원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도 가끔은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속내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 더 단단해지고, 함께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