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93일째, 민성이 D+542
오랜만에 민성이 반찬을 만들었다. 그것도 두 개나. 북엇국과 가지 조림, 둘 다 어렵지 않다. 30분 정도 걸렸나? 아이 요리는 간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재료만 잘 다듬어 볶고, 끓이면 끝이다.
최근 2주 간은 민성이 어린이집이 끝나면 매일 부모님 집에 갔기 때문에 요리할 일이 없었다. 오히려 엄마한테 받아온 아이 반찬을 제때 먹이기 바빴다.
매일 민성이 등하원을 책임지는 내게, 어린이집 원장님이 한 번 물은 적이 있다. "아버님이 그러면 민성이 이유식이랑 밥도 직접 하시는 거예요?" 당연한 것 아니냐고 대꾸하려다,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는 것도 어색하지만, 남자가 아이 밥을 해 먹이는 건 더 어색한가 보다. (그들에게는 놀랍게도) 나는 민성이가 이유식을 끊은 뒤로는 반찬 한 두 가지씩은 꼬박 해먹이고 있다.
요리는 막상 하면 그리 어렵지도 않고 심지어 즐거울 때도 있는데, 치우는 게 번거롭다. 당연히 민성이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 날은 내 금쪽같은 자유시간(?)도 줄어든다.
하지만 그걸 아이가 알 리 없다. 저녁밥을 먹이는데, 민성이가 밥만 먹는다. 가지도, 북어도 입 속에 잠깐 넣어보더니 바로 뱉어버린다. 나름 열심히 만든 반찬들이 식판에 고스란히 놓여있다. 불쌍한 내 반찬들.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아빠의 정성을 몰라주는 아이가 야속하면서도, 그렇게 맛이 없나 싶어 자존심도 상한다. 하긴 17개월짜리가 음식을 정성으로 먹을 순 없는 거니, 아이 잘못은 아니다.
아내와 나 둘 다 요리와 거리가 멀지만, 그나마 휴직을 10개월째 쓰고 있는 내가 미세하게 더 가까운 곳에 있다. 또 그게 응당 맞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민성이를 잘 먹이는 일은 내 몫이다. 내가 잘해야 한다.
지금도 걱정이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아내와 난 대충 먹는다고 해도 아이 밥은 잘 챙겨줘야 한다. 민성이가 밥을 잘 안 먹는다고 투정 부릴 때가 아니다. 요리왕의 길은 원래 길고도 험난한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