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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Feb 18. 2021

싫은 건 싫고, 좋은 건 좋고

휴직 294일째, 민성이 D+543

'딸기란 자고로 두 개씩 찍어먹어야 제 맛이랍니다!' / 2021.2.17. 부모님 집


눈이 녹아 비가 된다는 우수(雨水)라는데, 날씨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비가 얼어 눈이 되면 모를까. 어제(17일)도 눈보라를 뚫고 민성이를 등원시켰다.


나는 평일 닷새 중에 하루, 민성이를 데리고 부모님 집에 간다. 체력 비축 차원에서 수요일이 적당하다. 이틀 혼자 아이를 보고, 하루 부모님 집에 갔다가, 다시 이틀 독박 육아를 한다. 그러면 주말이고, 한 주가 끝이다.


다행히 오후에 눈은 그쳤다. 민성이 어린이집이 끝나자마자 아이를 꽁꽁 싸매 택시에 몸을 실었다. 바람이 매섭다. 올 겨울 들어 한 손에 꼽을 만큼 추웠다.


택시에서 내려 부모님 집에 들어가려는데, 민성이가 아파트 놀이터를 손으로 가리킨다. 내가 아무리 아이를 막(?) 키워도, 도저히 놀이터엔 데려갈 수 없는 날씨였다.


그러자 아이가 위아래 입술을 떨며 '푸' 소리를 낸다. 민성이가 요즘 부쩍 많이 하는 행동이다. 처음엔 밥을 먹기 싫어 그러는 줄 알았는데, 꼭 밥상 앞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싫다는 표현이다. 


아내와 둘이 있을 때, 민성이는 유독 나한테만 이 행동을 많이 했다. 그래서 며칠 아이가 얄밉고, 그래서 서운했다. 거의 1년째 육아휴직을 쓰고 있는데 돌아오는 건 침 세례라니.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니 나한테 만큼은 아니었지만 아내나 할머니 앞에서도 아이는 입술을 털었다. 내심 마음이 놓였다. 그건 민성이가 정말 싫을 때 하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싫은 건 싫고, 좋은 건 좋다는 아이의 의사표현이 날로 명확해진다. 음식도, 장난감도 뭘 원하는지 이제는 뚜렷이 알 수 있다. 문제는 줄 수 없는 걸 원할 때도 적지 않다는 거다. 그럼 아이는 또 입술을 턴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만 주고, 하고 싶은 것만 하게 해 주고, 그래서 아이한테 미움받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럴 순 없다. 민성이가 아무리 삐죽 대도 난 악역을 맡아야 할 때가 많다. 언젠가는 내 진심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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