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Feb 19. 2021

잘하고 있어

휴직 295일째, 민성이 D+544

'사자야, 내가 이거 줄테니까 다람쥐랑 싸우지 마.' / 2021.2.18. 우리 집


어제(18일), 아내는 차를 두고 갔다. 어제 민성이는 소아과에, 나는 치과에 가야 했다. 여러모로 차가 필요했다.


아내가 차를 두고 가는 날엔 민성이를 태운 채 아내를 회사에 데려다주고, 9시간 후에 다시 집으로 데리고 온다. 데려다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데리고 오는 건 조금 빠듯하다.


민성이는 저녁밥을 5시 반쯤 먹는다. 하지만 어제는 6시에 퇴근하는 아내를 데리러 가야 해서 아이 밥시간도 조금 당겼다. 밥을 차리고, 먹이고, 치운다. 약간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야 제때 출발할 수 있다.


식탁 밑에서 사방팔방으로 튄 밥풀을 줍고 있는데 시계를 보니 5시 40분이다. 울고불고하는 민성이 옷을 겨우 갈아입히고, 나도 옷을 대충 걸쳐 입은 뒤 아이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느낌이 싸하다. 그의 엉덩이가 따뜻하고, 바지춤 밖으로 익숙한 냄새가 흘러나온다. 허겁지겁 민성이 기저귀까지 갈아주고, 내 손은 씻을 새도 없이 차를 끌고 나왔다.


다행히 아내 회사엔 제때 도착했지만, 난 방전됐다. 힘없이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했다. 저녁엔 고기를 먹어야겠다. 

 

민성이를 재우고 아내와 늦은 저녁을 먹었다. 다행히 배달 용기엔 온기가 남아있었다. 식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어제 하루, 나도 민성이와 열심히 놀았나 보다. 그렇게 배가 고팠던 걸 보면. 


저녁엔 반주를 곁들이며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를 재우고 저녁에 아내와 술 한 잔 하면서 수다를 떠는 것, 육아휴직 기간 매일 똑같은 일상에 손에 꼽을만한 유희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많이 싸운다는데, 우린 잘 싸우지 않는다. 육아휴직을 써보니 왜 싸우는지는 알겠다. 내 몸이 힘든데 장사 없다. 내가 죽겠는데,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린 잘하고 있다. 어제 다시 한번 느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싫은 건 싫고, 좋은 건 좋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