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96일째, 민성이 D+545
추피, 그가 왔다. 며칠 전, 코로나에 매일 아빠와 '방콕'하는 아들을 위해, 아내는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녀는 맘까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민성이가 볼만한 책을 찾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추피 시리즈를 추천했다. 물론 경고도 잊지 않았다. '아이가 한 번 맛 들리면 빠져나올 수 없으니 조심하세요.' 그의 명성, 아니 악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책은 생각보다 작았다. 내 손바닥 크기만 했다. 아이들 책이 그렇듯이, 추피 이야기 역시 별 특별한 내용은 없다. 펭귄인 추피가 자전거를 타고, 낮잠을 자고, 목욕을 하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생활 동화다.
민성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거실 책장에 책을 꽂아놓았다. 크기는 작아도 권수는 50권이 넘었다. 책장 두 칸이 빼곡히 찼다. 추피는 참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은 펭귄이었다.
민성이는 곧바로 추피를 알아보았다. 처음 거실에 들어섰을 때, 그는 토끼눈으로 추피를 한 번, 나를 한 번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오오' 소리와 함께 곧바로 책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책을 살 때도 예상은 했지만, 17개월 아이에게는 좀 빨랐다. 민성이는 책을 서너 권 꺼내 뒤적이다가 금방 흥미를 잃고 블록 상자로 달려갔다.
민성이는 책의 내용보다는 책 자체에 관심을 보였다. 책장에서 책을 꺼내 바닥에 쌓고, 다시 집어넣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추피가 아직은 낯설고, 책에 글자가 많아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제껏 아이 장난감이나 책을 사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아이에겐 뭐든 적응하고 가까워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처음엔 재미있어하다가도 금세 흥미를 잃는 물건이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민성이가 요즘 잘 가지고 노는 블록도, 탑 쌓기 장난감도 처음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끼고 산다. 그러니 아직 추피 지옥이 찾아오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하긴 이르다. 선배님들의 조언은 늘 유용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