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97일째, 민성이 D+546
어제(20일), 여느 주말 오후처럼 민성이를 데리고 부모님 집에 갔다. 그곳에 가면 몇 가지 장점이 있는데, 민성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서 사회성을 기를 수 있고, 우리는 좀 쉴 수 있다.
민성이가 할아버지와 노는데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아내 손을 잡고 조용히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 빨래 밑에서, 조금 서늘했던 그 방에서 아내와 난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아내는 코를 골았다.
아내와 난 육아 가사분담을 잘하는 편이다. 난 육아휴직 중이니 기본적으로 집안일을 많이 하고, 매일 민성이 노래를 부르는 아내는 그의 수발 전담이다.
아내가 민성이를 돌볼 때 난 설거지나 빨래를 한다. 아내가 요리를 하면 내가 아이를 돌본다. 우리 집에선 한 사람이 일을 하는데, 다른 한 사람이 쉬는 일은 없다. 계속 놀아도 되는 사람은 민성이 뿐이다.
그렇게 일을 나눠하는데도 피곤하다. 아이가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눈 뗄 새 없이 그를 돌봐야 하는 주말이 더 그렇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아, 주말에 아무것도 안 하고 늘어지게 잠 한 번 자보고 싶다.
그게 가능했던 때도 있었다. 주말 내내 아내와 한 번도 밖에 나가지 않고 배달 음식을 시켜먹으며 침대에서 드라마를 보다 낮잠을 자던, 그런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럴 수 없다. 그때로 돌아갈 순 없다.
민성이가 독립할 때까지, 최소 20년은 아이에게 묶여 살아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가 자랄수록 나아지겠지만 기본적으론 그렇다.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느낄 때면, 답답할 때가 있다.
며칠 전 민성이를 재우고 아내와 맥주를 마시는데 그녀가 말했다. 예전에 둘이 심야영화를 보고 나서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 생각난다고.
그때는 심야영화를 볼 수 있었지만, 민성이의 애교와 눈웃음은 볼 수 없었다. 그의 너털웃음을 들을 수도 없었다. 내 삶에 잃은 게 없진 않지만, 얻은 게 더 크다. 그러니 괜찮다. 그때로 돌아가지 못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