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98일째, 민성이 D+547
어렸을 땐 툭하면 날씨 이야기를 꺼내는 어른들이 이상해 보였다. 만나자마자 오늘 날씨가 좋다 안 좋다, 지난주 날씨는 이랬고, 다음 주는 어떻다더라. 어른들은 만나면 날씨 이야기밖에 할 게 없나 보다 싶었다.
하루 두 번, 민성이 어린이집 선생님을 만난다. 매일 잘 노는 아이, 오늘 어땠느냐고 묻는 것도 한두 번이다. 어느새 나도 아이 신발을 신기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꽤 춥네요."
올해로 37살, 나도 이젠 집을 나서기 전에 날씨를 체크하고, 사람을 만나면 날씨 이야기를 꺼낸다. 나이가 들어서야 날씨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걸까, 아니면 날씨 말고는 물을 게 없을 만큼 삶이 무료해진 걸까.
지난 주말은 날씨가 봄 같았다. 어제(21일) 오전엔 오랜만에 아내와 민성이를 데리고 집 앞 놀이터에 나갔다. 겨우내 두꺼운 파카 속에 껴입었던 회색 후드티마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이따금 바람이 불었지만 차갑지 않았다. 기분이 좋았다. 민성이도 즐거워 보였다. 사람도 이따금 광합성을 해야 한다. 이유야 어쨌든, 37살의 내겐 이제 날씨가 중요하다.
점심에는 역시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외식을 했다. 직계가족 5인 이상 모임 금지가 풀리고 처음이다. 부모님과 우리 부부, 그리고 민성이까지 하면 딱 5인이다. 마지막 외식이 언제였더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처음에 5인 이상 모임이 안된다고 했을 때, 나는 민성이는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17개월 아이도 1인은 1인이었다. 그리고 어제 식당에서 먹는 걸 보니, 어쩌면 1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점심을 먹고 다 함께 인근 유원지로 산책을 나갔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나와있었다. 누구는 자전거를 타고, 누구는 호수 위에 연을 띄우고 있었다. 그들 역시 놓치기 아까운 날씨였을 테다.
따뜻한 햇살을 쬐고, 배불리 먹고, 아이의 애교를 실컷 눈에 담은 주말이었다. 이제 한 주만 지나면 3월이고, 봄이 코 앞이다. 다가올 봄날, 민성이와 새로 그려나갈 추억들에 가슴이 설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