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92일째, 민성이 D+541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그제(14일) 저녁, 아내는 농담인 듯 농담 아닌 농담 같은 말을 꺼냈다. '아, 이제 내일 회사 가면 조금 쉴 수 있겠다.' 공감이다. 연휴가 끝나야 쉴 수 있기는 우리 둘 다 마찬가지다.
다음날 아내는 다시 회사로, 민성이는 어린이집으로 향했고 집에는 또다시 나 혼자 남았다. 텅 빈 집안을 말끔히 정리하는 건 어느새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 역시 내겐 휴식의 연장이다.
연휴 마지막 날, 아내와 나는 둘 다 방전됐다. 아이 하나를 어른 둘이 못 이긴다. 이번 연휴엔 처음으로 민성이 타임아웃도 감행했고(어바웃 타임아웃(1),(2)), 코로나에 매일 '집콕' 신세였다. 이래저래 피곤한 일이 많았다.
집 청소와 운동을 하고, 커피도 마시며 차분히 연휴 독(?)을 빼다 보니 어느새 민성이 데리러 갈 시간이 되었다. 유모차를 끌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지난주 찾아온 민성이 코감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집 밖을 나서자 유모차가 찌그러질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분다. 딱 봐도 집콕 각이다. 그래도 요즘은 집에서도 잘 노니 괜찮겠지. 온몸으로 칼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주부터는 아내가 퇴근할 때까지 계속 혼자 아이를 봐야 한다. 아버지가 다시 일을 구하셔서 평일엔 부모님 집에 가기 어렵다(밀당의 고수). 그는 다시 내 차지가 되었다.
신발을 벗겨주자마자 민성이는 블록 상자로 달려갔다. 사슴과 기린이 멀미가 날만큼 미끄럼을 태워주다가
소리책을 누르며 신나게 동요를 듣고, 상자에 도형 끼우기 놀이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콘텐츠가 바닥났다. 거실을 온통 아이 장난감으로 도배해놨는데도 그렇다. 어제(15일) 처음 느꼈다. 아, 민성이가 심심해하는구나.
예전엔 내가 좀 고달플지언정 아이가 심심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말썽을 부리는 것만으로도 바빠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가 그만큼 자랐다. 일상에서 어떻게 더 많은 경험을 쌓게 해 줄 것인가. 고민의 시점이 찾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