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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n 01. 2021

장인어른 기일(2)

휴직 397일째, 민성이 D+646

'엄마, 제가 얼마나 남겨드릴 수 있을지 자신할 순 없지만, 그래도 노력해볼게요.' / 2021.5.30. 동탄 센트럴파크


평생을 대구와 그 인근에서만 사셨던 장인어른을 (그래서 그에겐 일면부지일) 경기도 용인에 모시기로 한 건, 서울에 사는 우리가 더 자주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실제로 군산에 내려오기 전엔 가끔 아버님을 뵈러 갔었다. 지금보다 훨씬 어린 민성이를 데리고도 갔었다. 민성이는 아마 이번이 세 번째일 거라고, 아내는 말했다. 


하지만 군산에 와선 처음이었다. 이곳에서 아이를 데리고 용인에 다녀오는 건 쉽지 않았다. 실제로 전날, 아내와 나는 동탄에서 하룻밤 묵은 것만으로도(용인보다도 가까운데!) 이미 녹초가 됐다(장인어른 기일(1)).


그제 근처 대형마트에서 사놓은 죽으로 민성이 아침밥만 간단히 먹이고, 곧바로 수목장 숲으로 향했다. 동탄 숙소에서 용인까지는 1시간이 채 안 걸렸다.


숲은 전보다 더 화려해졌다. 산봉우리 사이사이 보이는 모든 것이 빨갛고 노랬다. 그만큼 이곳에 잠든 이들이 더 많아졌단 얘기일 테다. 새로 놓인 조화만큼 숲은 아름다워진다. 


자신이 제일 화려하다고 뽐내는 조화들 사이에서 수수한 옷차림의 장인어른이 보였다. 생화만큼은 아니지만 조화도 영원하진 않았다. 아버님 비석 앞에 꽂혀있던 조화는 색이 많이 바래 있었다.


우리와 같은 숙소에 묵었던 처제, 민성이 이모는 헌 조화를 빼내고 화사한 새 조화를 집어넣었다. 아내와 처제는 꽃은 예쁜데 크기가 너무 작다며 아쉬워했다. 이 숲을 찾은 모든 이들이 다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버님 비석 앞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일회용 접시에 집에서 들고 온 과일을 올려놓고, 생전 아버님이 좋아하시던 술도 몇 잔 건네드렸다. 술을 안 가지고 왔으면 아빠가 서운해했을 거라고, 처제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기억하는 장인어른은 소년이셨다. 아내는 그래서 가끔 속이 터진다고 했지만, 아버님을 생각하면 늘 해맑은 미소가 떠오른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1년, 그 사이 처제는 좋은 회사에 취업을 했고, 민성이는 별 탈없이 건강하게 자랐다. 소년 같던 아버님이 그의 두 딸을 잘 지켜준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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