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396일째, 민성이 D+645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지 어느새 1년이다(장인어른이 운명하셨다, 주무시듯 편안하게). 그 사이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군산으로 이사했고, 두 돌을 목전에 둔 민성이는 제법 어린이 태가 날만큼 컸다.
용인 수목장에 계시는 아버님 기일을 어떻게 지킬지, 아내만 다녀올지 아니면 민성이를 데리고 가족이 다 같이 다녀올지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다. 그녀는 월요일 하루 연차를 냈다.
거리가 좀 되지만, 이번엔 차를 가져가기로 했다. 기차를 타기엔 수목장까지 들어가는 차편이 마땅치 않았다. 대신 군산과 용인 그 중간 어디쯤에서 전날 하루 묵기로 했다.
아내가 찾은 곳은 동탄에 있는 4성급 호텔이었는데,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키즈룸 때문이었다. 예전에 민성이를 데리고 하루 '호캉스'를 해보고 바로 느꼈다. 아, 아이와 함께 하는 호텔 여행은 바캉스 근처에도 갈 수 없구나.
분명 아내와 둘이 왔을 땐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재충전이 됐는데, 민성이와 함께 갔을 땐 배터리가 줄줄 새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좋은 호텔이라 하더라도 객실에는 아이에게 위험한 물건이 너무 많았다.
키즈룸은 만족스러웠다. 일단 민성이 반응이 좋았다. 객실 천장에는 구름 조명이, 바닥엔 조그만 텐트와 미니 소파가 놓여있었다. 옷장 안에선 앙증맞은 아기 가운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하지만 키즈룸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못했다. 민성이는 얼마 안 돼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아이를 데리고 호텔 앞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는 아내의 아보카도 바나나 주스를 반이나 들이켰다.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와 파스타로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졌다.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몇 블록을 뛰어다니다 겨우 우산을 사 오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하루 종일 민성이를 밀착 마크한 아내도, 장거리 운전을 하고 비에 쫄딱 젖은 나도 녹초가 되었다. 우리를 그렇게 만든 민성이도 꽤 피곤했는지 어젯밤 그는 한 번도 깨지 않았다. 아내도 나도 그의 옆에서 아이스크림처럼 널브러졌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