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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y 30. 2021

쪽잠도 사치

휴직 395일째, 민성이 D+644

'엄마, 같이 가요. 전 썰매도 들고 가야 한다고요!' / 2021.5.29. 군산 킹콩놀이터


어제(29일)는 대구에 사시는 장모님이 군산에 오셨다. 내 생각엔 7할은 민성이를, 3할은 아내를 보기 위해서다. 다행히 날씨가 좋았다. 터미널에서 장모님을 태우고, 지난주에 갔던 숲 놀이터를 또 찾았다.


민성이는 처음엔 해먹에 누워 과자만 와그작대더니, 몸이 풀리자마자 썰매를 시작으로 모래놀이, 나뭇가지 줄세우기 등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았다. 하지만 그가 몰랐을 뿐, 시간은 빠르게 흘러 12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차에서 곯아떨어졌다. 우리는 당초 돈가스 집에서 외식을 하려고 했지만,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곱게 포장된 왕돈가스와 해물 우동, 볶음밥을 양손 가득히 들고 다시 차에 올랐다.


민성이가 잠들었으니, 일단 집에 가서 아이를 조용히 누여 그대로 재우고, 어른들 먼저 점심을 먹고 나서 좀 쉬려던 게 우리의 플랜 A였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가 너무 많았다. 지역 생활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가 (서울과 비교하면) 거리에 차가 없다는 건데, 어제는 사거리 한 번 지나는데 신호를 몇 번 받았나 모르겠다. 일단 그렇게 귀가가 늦어졌다.


겨우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살며시 아이를 안은 채 엘리베이터 앞에 섰는데, 코 앞에서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는 또 왜 이렇게 높이 올라가는지. 어수선한 분위기에 민성이는 결국 눈을 떴다.


하지만 아직 낙담하긴 이르다. 아이 표정이 약간 멍한 걸 보면 희망이 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내는 민성이를 안고 아이 방으로 들어갔다. 좀 조용하나 싶었는데 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명백한 실패다.


민성이는 그대로 웃으며 방을 뛰쳐나왔다. 차 안에서 30분이나 잤을까. 그리고 민성이는 더 이상 낮잠을 자지 않았고, 아내와 나도 하루의 유일한 휴식시간을 누릴 수 없었다.


명랑 쾌활한 21개월 아이를 돌보다 보면 부부간에 전우애가 생긴다. 어제 어머님이 거실에서 민성이를 잠시 봐주실 때 아내와 나는 전우애를 느끼며 찰나의 낮잠을 시도했지만, (적군) 민성이에게 곧바로 저지당했다.


장모님이 오셔서 어른 셋이 됐으니 아이를 돌보는 게 조금 편해야 맞는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른이 한 명 늘면, 민성이도 더 파워업이 되나 보다. 그렇게 정신없는, 쪽잠도 사치인 하루가 지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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