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394일째, 민성이 D+643
어제(28일)는 아침부터 창 밖이 어둑어둑했다. 세찬 바람에 아파트 조경수가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청소기를 앞뒤로 밀며 오늘 민성이랑 나가긴 글렀구나 생각했다.
점심을 먹고 한껏 여유로운 금요일 오후를 즐기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날씨가 갰다. 아파트 사이로 다시 햇살이 내리쬐고, 세찬 바람은 선선한 미풍으로 바뀌었다. 이번 주는 날씨가 계속 변덕스럽다.
민성이 하원길, 오랜만에 아이 입학 - 어린이집은 입학이 아닌가? - 동기를 만났다. 그는 조그만 미끄럼틀 위에서 한참을 신나게 놀았다. 서로 손을 잡거나 하진 않았지만 둘 다 엄청 들떴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이제 친구를 아는 것 같아요." 친구 엄마가 말했다. 미끄럼틀 위에서 한 아이가 (마치 한 마리의 공작새처럼) 뱅글뱅글 돌면, 다른 아이가 따라서 뱅글뱅글 돌며 해맑게 웃었다.
친구와 인사를 하고 웬일로 민성이가 먼저 놀이터를 떠났다. 집에 가나 싶었는데 그리 쉽게 하루가 끝날 리 없었다. 나의 안일함을 비웃듯 민성이는 '호로록' 소리를 내며 아파트 외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 아파트 옆엔 정비가 안 된 (그래서 지저분한) 하천이 흐른다. 호로록 소리는 물을 뜻한다. 그 하천물을 다 호로록 마셔버리겠다는 건지, 어쨌든 무서운 기세로 그는 그곳을 향해 뛰었다.
하천을 더 가까이서 봐야겠다는 아들을 아파트 울타리 위로 열 번 넘게 들었다 놨다 하니 시간이 어느새 6시, 아내가 퇴근할 시간이 다 됐다. 하원 후 밖에서 2시간, 또 신기록을 경신했다.
저녁엔 부모님이 집에 오셨다. 반찬도 가져다주고 손자도 볼 겸.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부모님 가시는 길 배웅하러 나가려 하니, 민성이가 아빠를 목놓아 부르며 달려온다.
그러더니 내 손을 잡고 안으로 끈다. 아빠 가지 말라는 건가 보다. 그래도 2시간 놀아준 보람이 있다. 그래도 육아휴직을 쓴 보람이 있다. 그의 밀당 실력, 아직 녹슬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