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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y 28. 2021

21개월 정산; 스파이더 베이비

휴직 393일째, 민성이 D+642

기는 것도 불안했던 아이가 이젠 도움없이도 혼자 그물망 위를 걷는다. 격세지감이다. / 지난해 9월(좌)과 지난 26일(우)


1년 전 육아휴직을 막 시작했을 때, 민성이는 겨우 앉을까 말까 했다. 그래서 아이와 산책을 나설 땐 늘 유모차를 대동했고, 놀이터에 가도 바닥에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풀이며 꽃이며 삼라만상을 바라보는 민성이의 눈은 늘 반짝였지만, 기껏해야 내 품에 안긴 채 팔을 뻗어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랬던 아이도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레 걷고 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1개월이 꽉 차도록 민성이가 어려워했던 게 있는데, 바로 놀이터 미끄럼틀에 딸린 그물망 건너기였다. 이제는 그물망 사이로 발이 잘 빠지지도 않는데, 그곳을 지날 때면 항상 나를 찾았다.


그러다 그제(26일) 민성이는 처음으로 혼자 그물망 건너기에 성공했다. 누군가에겐 대수롭지 않게 들릴 수 있겠지만, 생후 8개월부터 아이를 지켜봐 온 나로서는, 그게 얼마나 대수로운 일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후 21개월, 민성이는 이리도 많이 자랐다. 여기에 엄청난 응가를 만들어내 변기가 막히는 일도 있었고(또 하나의 역사), 활발함의 정도가 날로 강해져 처음으로 층간소음 항의도 받았다(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민성이가 이젠 차 타고 이동하는 것도 꽤나 잘 참을 수 있어서 - 물론 부릉부릉 구경에 신이 나 그런 거지만 - 지난 한 달간 아이와 이곳저곳 많이 놀러 다녔다. 공휴일이 두 번이나 껴있던, 가정의 달 덕도 봤다.


2박 3일 고창에 놀러 가 청보리밭을 둘러보고 장어와 간장게장을 먹었다(고창의 민성이(1),(2),(3)). 어린이날에도(오늘은 내가 주인공!), 석가탄신일에도(노세 노세 휴직해 노세) 교외로 가족 피크닉을 다녀왔다.


매달 정산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아이가 예쁜 짓만 하는 건 아니다. 뜻대로 안 된다 싶을 땐 나한테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고(아들에게 얻어맞은 날), 나누는 걸 어려워할 때가 많았다(나누는 게 서툰 아이). 


육아휴직을 한지 벌써 13개월, 육아는 제법 손에 익었지만 몸과 마음의 피로가 많이 쌓인 게 느껴졌다(무료함과 외로움이 목젖까지). 남은 휴직기간, 이제는 나를 위해서도 시간을 조금 쓰기로 했다(민성이, 니 하오?).


부쩍 자란 아이의 모습이 기특하고 자랑스럽지만, 지나간 아이의 모습은 이제 영영 볼 수 없다 생각하니 애달프기도 하다. 22개월 정산까지, 추억 한 겹이라도 더 쌓아보자 다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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