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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y 06. 2021

오늘은 내가 주인공!

휴직 371일째, 민성이 D+620

'오늘은 내가 주인공!' / 2021.5.4. 어린이집


육아휴직을 한 지 1년 하고도 엿새가 지났다. 그 말은 지난해 어린이날에도 내가 휴직 중이었단 뜻이다. 그런데 작년 어린이날엔 무얼 했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육아일기를 뒤적여보니 그날 민성이를 데리고 아내와 백화점에 가서 그녀가 회사에서 편히 신을 수 있는 구두를 샀다. 그리고 집 정리를 했다(아이 머리 위로 거울이 쓰러지고 있었다). 


모두 어린이와는 상관없는 일정이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1년, 민성이는 생후 20개월이 되었고 이젠 제법 어린이 태가 난다. 어제(5일) 민성이 생애 두 번째 어린이날은 꽤 어린이날처럼 보냈다.


평소처럼 민성이 아침을 먹이고, 오전 9시쯤 집을 나섰다. 근처 빵집에서 주전부리로 먹을 빵과 우유를 산 뒤, 부모님을 태우고 군산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전주 수목원으로 향했다.


우리는 돗자리와 간식을 챙겨 소풍을 가기로 했다. 소풍을, 전주 수목원을 추천한 건 부모님이었다. 예전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참 좋더라며, 어린이날에 민성이를 데리고 가보면 어떻겠느냐고 하셨다.


바람이 좀 불긴 했지만 쾌청한 날씨였다. 전날 비가 내려선 지, 하늘이 더욱 깨끗하게 푸르렀다. 라디오 DJ의 말대로, 어린이날인데 집에만 있지 말고 어디 나갔다오라는 것 같은, 그런 날씨였다. 


우리가 찾은 곳은 도로공사에서 조성한 수목원으로, 규모가 상당했고 조경은 탁월했다. 특히 형형색색의 꽃들이 압권이었다. 거기에 입장료는 무료였다. 내가 가본 수목원 중에 가히 손에 꼽을 정도였다.


민성이도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도 잘 놀기 때문에, 민성이의 반응은 믿을 게 못 된다. 하지만 아내의 평가는 늘 냉정하다. 그녀는 다음에 민성이를 데리고 또 놀러 오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수목원에선 돗자리를 펼 수 없었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전주 월드컵 경기장 공원으로 차를 돌렸다. 예상대로 그곳에도 녹지가 잘 조성되어 있었고, 우리는 그제야 맘 편히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민성이는 한 손에 김밥을, 한 손엔 카스텔라를 쥐고 폭풍 먹방을 선보였다. 후식으로 먹은 딸기에 그의 옷은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돌아오는 길, 민성이는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졌다. 어린이 덕에, 사실은 어른이 더 즐거웠던 하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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