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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y 06. 2020

아이 머리 위로 거울이 쓰러지고 있었다

휴직 6일째, 민성이 D+255

이것이 말로만 듣던 '나가요' 병인가. 8개월인데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창문을 한 번, 내 얼굴을 한 번 보며 운다. 어린이날이라 이거지. / 2020.05.05 우리 집


오전 9시 반, 죽은 줄 알았던 아내가 일어났다. 민성이는 이미 4시간 전 일어났고, 분유 270ml를 '원샷'했고, 낮잠을 잤고, 한우 이유식을 먹었다. '한우야 내려가라' 민성이를 트림시키고 있는데, 침실 문이 열렸다.


그제(4일)는 와이프 복직 첫날, 어제는 그다음 날이었다. 복직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았을 거다. 뭐했느냐 물으니 '컴퓨터 조립'이라 했다. 생각했다. '부인, 컴퓨터만 설치했는데 이 정도면….'


민성이의 첫 어린이날, 백화점에 갔다. 와이프가 회사 갈 때 편하게 신을 수 있는 구두를 사고 싶다고 했다. 8개월 만에 신은 구두, 와이프는 뒤꿈치가 까져있었다. 효자 강민성은 어린이날이지만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민성이에겐 어린이날도 처음이지만, 백화점도 처음이었다. 앞으로 민성이는 모든 게 처음일 거다. 육아휴직을 쓰면, 아이의 처음을 함께할 수 있겠구나. 베이지색 에나멜 구두를 신어보고 있는 와이프를 보며 생각했다.


오후엔 와이프와 집 정리를 했다. 혼자 애를 봐보니, 부부가 함께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미루지 않고 해 놓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정리도 함께 있을 때 해놔야 할, 대표적인 일이다.


민성이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어느새 내 발등을 만지고, 혹은 때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옷장 앞에 서있던, 내 키보다 큰 전신 거울이 민성이 머리 위로 쓰러지고 있었다.


'어어, 아아악!' 비명에 가까운, 큰 소리가 들렸다. 내 목소리였다. 본능적으로 쓰러지는 거울을 잡았지만, 거울을 잡고 나서 더 놀랐다. 민성이가 없을 때도 어쩌다 넘어지던 거울이었다. 그동안 왜 이걸 버리지 않았을까.


예기치 못하게 일어나니까 사고다. 단 한순간, 사고는 모든 것을 앗아간다. 매사 민성이 안전을 걱정하는 와이프를 보며, '걱정도 팔자'라 생각했었다. 어제 거울이 쓰러지지 않았다면, 난 계속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필 어린이날이었다. 내가 그때 거울 옆에 서있지 않았더라면, 팔이 닿지 않았더라면, 끔찍한 가정(假定)이다. 다시없을 교훈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민성이의 첫 어린이날, 선물을 받은 건 35살의 초보 아빠인 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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