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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Dec 27. 2020

16개월 정산; 열려라 말문

휴직 241일째, 민성이 D+490

'저도 이제 17개월 차니 수저질을 해야겠네요. 아휴, 피곤해.' / 2020.12.26. 우리 집


민성이의 생후 16개월은 오롯이 나와 함께였다. 아이가 16개월 차에 들어서자마자 코로나가 다시 창궐했고, 어린이집은 휴원했다(어린이집이 문을 닫았다). 그때는 몰랐다. 정말 이렇게 길어질 줄은.


처음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것도 결국은 마음먹기 나름이라 여겼다(원효대사의 육아법). 그러나 서른여섯 아빠의 '아자, 아자, 파이팅' 같은 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어린이집 휴원 2주 차).


내 육아 라이프에서 어린이집은 절대적이었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휴원령은 결국 풀리지 않았고(다음 주에도 휴원령은 유지됩니다), 나는 과거 가정보육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다행히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가정보육이 길어지면서 나도 서서히 아이와 살아남는 법을 익혔다. 장난감 기차를 사서 시간을 보냈고(장난감 기차와 민성이), 아이를 달래 낮잠을 더 길게 재울 수 있게 됐다(낮잠, 미션 임파서블).


아빠의 유리 멘털은 갈대처럼 휘청댔지만, 민성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쑥쑥 자랐다. 어떨 땐 아빠를(보이는 건 다 아빠), 어떨 땐 엄마를 입에 달고 살았다(엄마밖에 안 보여). 그는 '밀당'의 고수였다.


확실히 아이 말이 늘었다.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단어는 '엄마' '아빠' 정도지만, 아이의 발음이, 말을 뱉는 상황이 더 정확해졌다. 예전엔 엄마를 해도 얻어걸리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진짜 엄마를 부르는 느낌이다.


말로 다 표현하진 못하지만 아이 머릿속 세계는 점점 팽창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아이가 실제 사물과 연결할 수 있는 단어가 현저히 늘었다. 다음 달엔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단어들이 하나둘 입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을까. 


16개월 민성이는 의자에 스스로 앉을 수도 있게 됐다(왕좌의 민성이). 말썽도 늘었다(보스는 성장한다). 그의 몸과 정신 모두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인다. 


이번 달은 많이 힘들었다. 가정보육은 만만치 않았다. 울고불고 한 걸음씩 내디뎠는데, 뒤돌아보니 갈지(之) 자다. 그래도 뒤로 가진 않았다. 그렇게 믿는다. 그런 믿음으로 아이 손을 잡고 다시 17개월을 내디뎌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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