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Dec 10. 2020

보이는 건 다 아빠

휴직 224일째, 민성이 D+473

'흠. 국수는 이런 촉감이군요. 아빠, 조금 더 줘 보세요.' / 2020.12.09. 우리 집


민성이가 옹알이를 막 시작했을 무렵, 내가 아이에게 제일 많이 했던 말은 "민성아 '아빠' 해봐"였다. 그때 나는 거의 민성이를 졸졸 따라다니며 '아빠'를 구걸했다.


휴직을 하고 종일 아이를 보는데 아빠 소리라도 들어야겠다는, 보상 심리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민성이는 아빠 비슷한 말을 해주기도 했다(아빠빠빠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 소리에 대한 내 집착은 사그라들었다. 휴직 반년이 지나니, 아빠라고 불리는 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빠 소리를 듣는다고 보상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그런데 요즘 들어 민성이가 부쩍 아빠 소리를 많이 한다. 여전히 날 보면서 아빠라고 하는 건 아니다. 아빠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냥 아빠를 외치며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 희한한 풍경이다.


하지만 의미 없는 외침이라기엔 발음이 너무도 정확해서, 그때마다 가족들은 다 날 쳐다본다. 누군가 "어? 민성이가 아빠 찾네?" 해서 아이에게 가보면, 정작 그는 왜 왔냐는 식이다. 참나.


내가 민성이를 쫓아다니며 아빠 소리를 구걸할 때, 아내는 내게 "오빠, 나중엔 뭐든 다 아빠라고 한대"라며 위로하곤 했다. 지금이 딱 그렇다. 기분이 묘하다.


어제(9일)도 민성이는 눈에 보이는 건 다 아빠라고 불렀다. 아내도 매번 "아빠, 저기 있네"라고 맞장구를 쳤지만 역시나 아이는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었다. 왜 삼라만상이 그에겐 아빠인 것일까.


민성이가 첫걸음을 떼고 나니 무섭게 걷기 시작한 것처럼, 아이가 말을 하는 게 얼마 남지 않았단 생각이 든다. 그땐 정말 나와 눈을 마주치면서 아빠라고 부르겠지. 설레면서도, 그 무게가 무섭기도 하다. ###

매거진의 이전글 그날이 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