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22일째, 민성이 D+471
내가 경솔했다.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좌절감과 분노는, 그러니 오롯이 내 탓이다. 나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 코로나 재확산 사태가 금방 누그러질 것이라 낙관한 걸까.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며칠 째 6백 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곧 천 명을 돌파할 거란 얘기도, 거리두기 3단계를 고려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들린다. 뉴스 하나하나가 모두 절망적이다.
어린이집 휴원 2주째, 난 월요일부터 좌절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지난주, 휴원 소식을 처음 전해 들었을 때만 해도 난 의외로 담담했다. 원효대사의 해골물까지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던 나였다(원효대사의 육아법).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 내가 담담할 수 있었던 이유는 희망 때문이었던 것 같다. 코로나는 다시 잠잠해지고 며칠 내 민성이가 다시 어린이집에 갈 거라는 희망. 그 며칠이, 내게는 1주, 길어야 2주였나 보다.
에이 설마, 다음 주에는 민성이가 다시 어린이집에 가겠지, 라는 희망은 매우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다음 주, 그다음 주도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거란 보장이 없다. 올해를 훌쩍 넘길지도 모른다.
터무니없는 낙관에 기대고 있던 내 연약한 정신은 곧바로 휘청거렸다. 이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나는 계속 집에서 혼자 아이를 봐야 한다. 모든 일은 최악의 상황을 전제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내 실수다.
하루에 코로나 확진자가 6백 명씩 나오는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일부 부주의한 이들이나 정책 결정자, 내 주변 사람, 그 누구를 탓한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만 더 힘들어질 뿐이다.
답답하다는 말이, 힘들다는 말이 한숨처럼 새어 나온다. 하지만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그 한숨은 허공을 맴돌다 다시 내 귀에 꽂힌다. 내가 들어봐도 엄살처럼 들린다. 모두가 힘들다. 내 몸과 마음은 내가 추스를 수밖에 없다.
오후에 민성이를 태우고 부모님 집을 가다 아이에게 물었다. "민성아, 나중에 아빠한테 잘해줘야 돼?"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던 아이가 "응" 그런다. 또 한 번 물으니, 또다시 그런다. 우연이겠지만,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내 말이 맞다. 내가 아이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날 지켜주고 있다. 휘청거리는 심신을 다시 붙들어 매자. 힘이 부치면 아이를 품에 안고, 그의 볼에 얼굴을 한 번 비빈 뒤 다시 한번 힘을 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