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390일째, 민성이 D+639
내가 육아휴직을 한다고 했을 때, 적잖은 회사 동료들이 말했다. 뭐라도 좀 남겨 와. 돌이켜보면 대부분 남자들이 그랬던 것 같다. 육아휴직을 장기(혹은 포상) 휴가 정도로 생각하는 남자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나도 뭐라도 남겨볼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다. 무려 2년이다. 아이 돌보는 게 익숙해지면 자기계발을 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1년 하고도 한 달이 지났다.
물론 핑곗거리는 널렸다. 무엇보다 코로나가 컸다. 중국어 방문 학습을 받아볼까 하고 상담을 받았던 게 지난해 8월 말, 민성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직후였다. 그때만 해도 의지가 꽤나 충만했다.
결재만 하면 됐는데, 코로나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리 급한 것도 아니니 상황을 지켜보자 했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지기는커녕 대유행이 터졌다. 어린이집이 한동안 문을 닫으면서, 나의 학습 의지도 문을 닫았다.
한여름에 만났던 중국어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이 초여름의 문턱이니 사실상 한 바퀴를 돌았다. 다행히 선생님은 날 기억해주었다. 곧바로 공부를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그 첫날이 어제(24일)였다.
진짜 이러다간 휴직이 끝나겠다는 위기감이 제일 컸고, 이젠 생활의 일부가 된 코로나는 더 이상 핑계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육아와 가사가 몸에 익으면서 당장 오후만 돼도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로 뭔가를 배운다면 중국어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 그 흔한 제2외국어 과목으로도 배워보지 못해 진정 중국어의 중자도 모르는 나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은 친절했지만, 딱딱하게 굳어버린 내 뇌는 친절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아내는 말했다. 오빠가 제일 똑똑했던 건 취준생 때였다고. 맞는 말이다. 그때부터 내 지성은 줄곧 내리막길이라는 걸, 또다시 절감했다.
민성이 하원 후에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계속 중국어의 사성을 읊조렸다. 몇 번을 되뇌어봐도 2성과 3성의 성조가 잘 구분되지 않았다. 그래도 즐거웠다. 아들도 보고, 중국어도 배우고. 남은 휴직 기간이 더 알차질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