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Jun 05. 2021

거래의 기술

휴직 401일째, 민성이 D+650

두고두고 기억될, 너와 나의 아지트. / 2021.6.4. 아파트 단지


21개월 민성이는 요즘 기저귀를 갈기 싫어한다. 어린이집 끝나고 밖에서 놀다 들어오면 바지가 묵직한 경우가 태반인데, 새 기저귀만 가지고 오면 그렇게 손사래를 친다. 


그런 상태에서 강제로 기저귀를 갈면 당연히 사달이 난다. 아이는 울고불고 발버둥을 친다. 힘이야 아직은 내가 우위니 강제로 갈면 갈겠지만, 진이 빠지기도 하거니와 기분도 영 별로다.


그래서 내가 쓰는 방법은 거래다. 아이가 간식을 달라고 하거나 책을 읽어달라고 할 때, 혹은 같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자고 할 때, 기저귀를 갈면 해주겠다고 하는 거다.


하지만 민성이도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 역시 일단 자신의 뜻을 최대한 관철시키려 노력한다. 아이의 목표는 명확하다. 아빠에게서 간식을 얻어내고 같이 놀되, 기저귀는 갈지 않는 거다.


그렇게 두 남자의 힘겨루기는 한동안 이어진다. 민성이가 책이나 장난감을 들고 다가오면 나는 기저귀를 내민다. 그럼 민성이는 고개와 손을 강하게 휘젓고는 잠시 물러선다. 그리고 몇 분 후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어제(4일)는 힘겨루기가 꽤 오래 지속됐다. 기저귀 가는데 족히 1시간은 걸린 것 같다. 심지어 어제 그는 내 손에 있는 기저귀를 땅바닥에 몇 번 패대기치다가, 아예 기저귀함에 도로 가져다 놓기까지 했다.


무슨 뜻인지 모를 수 없는 그의 강력한 의사 표현에 웃음이 새어 나온다. 본인은 매우 뿔이 나있지만, 나는 깜찍해 죽는다. 저 축축한 기저귀를 새 걸로 갈면 참 상쾌할 것 같은데, 뭐가 그리도 싫은 걸까. 


하지만 아이가 귀엽다고 뜻을 다 받아주면 안 된다. 한 번 그냥 넘어가기 시작하면, 아이는 다음에도 기저귀는 갈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챙기려 할 것이다. 그래서 부모의 일관된 태도가 중요하다.


결국 아내가 퇴근할 때가 다 돼서야 민성이는 내 앞에 드러누웠다. 기저귀를 갈아도 좋단 뜻이다. 역시나 기저귀는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이후 나는 약속대로 최선을 다해 그와 놀아주었다. 


육아를 1년 넘게 하다 보니 조금 여유가 생긴다. 아이가 투정을 부리거나 떼를 써도 예전보다 덜 당황스럽다. 민성이가 자란 만큼은 아니어도, 나도 아빠로서 조금은 성장했나 보다. ###

매거진의 이전글 400번째 저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