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Jun 04. 2021

400번째 저녁

휴직 400일째, 민성이 D+649

;친구들아, 우린 영원히 함께야. 그렇지?' / 2021.6.1. 어린이집


점차 감흥이 없어진다. 육아휴직 한 달이 되던 날, 100일과 200일, 그리고 300일째엔 하나같이 감상에 젖었더랬다. 벌써 시간이 그만큼 흘렀구나. 민성이 아빠, 고생했어, 같은 말로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다.


하지만 이쯤 되니, 휴직 400일이 뭐 별건가 싶다. 물론 휴직을 막 시작했을 때 민성이의 기어 다니는 사진을 보면 여전히 코 끝이 찡하긴 하지만, 잠깐이다. 난 어느새 닳고 닳은 현실 육아꾼이 되었다.


육아꾼은 휴직 400일에도 평소처럼 아내가 퇴근하자마자 부랴부랴 세 사람의 밥상을 차렸다. 민성이를 챙겨가며 반은 입으로, 반은 코로 밥을 먹고 나서 나는 주방을, 아내는 아이를 정리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각자 할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저녁 8시, 민성이가 잘 시간이다. 그는 더 놀고 싶어 하지만, 자는 시간만큼은 아내도 나도 단호박이다. 침실에서 책을 읽다 자는 걸로 아이는 한 걸음 물러선다.


8시에 자러 들어가면 아내는 대강 8시 40분쯤 아이를 재우고 나온다. 사실 나올 때가 반, 안 나올 때, 아니 못 나올 때가 반이다. 내 휴직이 길어질수록, 아내는 민성이 옆에서 그대로 잠들 때가 많아졌다.


아이 재잘거림의 크기와 빈도는 시간에 반비례한다. 아내 말로는 민성이는 그녀 위에 올라가 얼굴을 바짝 맞대고, 그가 아는 모든 말을 쏟아낸단다. 그러고 나서야 그는 지쳐 잠이 드는 것이다.


나는 그 사이에 브런치를 쓴다. 낮에 글감을 메모해둔 날은 수월하지만, 그렇지 않을 땐 그날 민성이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열심히 기억을 뒤적여야 한다. 오늘이 어제 같은 날이 태반이라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렇게 초고를 써두고, 다음날 아침 다시 한번 글을 꺼내 살펴본 뒤 브런치에 올린다. 그렇게 나는 399편, 지금 이 글을 포함하면 400편의 육아일기를 썼다. 내가 휴직을 한 날짜와 정확히 같다.


별 탈없이 400일이 지났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써왔다는 건, 그만큼 우리 부부와 민성이의 삶에 큰 변고가 없었단 뜻이기도 하다. 우리 세 가족의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충분한다. 충분히 값진 400일이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솔방울과 민들레 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