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05일째, 민성이 D+654
민성이가 거의 두 돌이 될 때까지, 우리 부부가 일관되게 지켜온 게 하나 있다. 바로 수면의식인데, 그중에서도 난 소등을 중요하게 여긴다. 아이의 잠은 불 끄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이 수면의식은 민성이를 조리원에서 데리고 오면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때는 저녁 6시면 집에 불을 끄고 블라인드를 내렸다. 여름엔 대낮처럼 밝은 시간이었지만, 이러거나 저러거나 우리 집은 늘 캄캄했다.
민성이가 커가면서 소등 시간은 점점 뒤로 밀려났다. 요즘은 7시 반쯤 불을 끈다. 이전엔 불을 꺼도 아이가 별 반응이 없거나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말았는데, 근래 그는 조금 달라졌다.
뭐랄까, 아이는 본인이 재미있게 놀고 있고 잘 생각이 없는데, 느닷없이 불을 왜 끄냐는 듯한 눈빛을 보낸다. 그래도 난 강행한다. 집에 있는 등이란 등은 모두 꺼도 잘까 말까다. 소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다 어제(8일) 아내와 내가 모두 깜짝 놀란 사건이 벌어졌다. 내가 불을 끄자, 민성이가 불을 켠 것이다. 너무나 하찮은, 별 거 아닌 일로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생후 21개월 동안 처음 있었던, 일종의 역모 같은 거다.
평소처럼 내가 불을 끄니, 매트 위에 스티커를 붙이며 놀던 아이는 벌처럼 소파 위로 날아올라 거실 스위치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불을 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와 나는 동시에 웃었는데, 내 것은 쓴웃음에 가까웠다.
수면의식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소등식이 위협받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아이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어야 하나 싶을 때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이가 스위치를 만질 수 없으면 되는 일이었다. 난 거실 소파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그는 아직 스위치에 손이 닿지 않는다. 가설은 적중했다. 민성이는 큰 거부감 없이 점등을 포기했다.
씻고 나온 아내는 그 모습을 보곤 내가 역시 약자 - 도대체 누가 약자인 건지 - 에게 강하다며 박장대소했지만, 난 그녀의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고로 전쟁을 치르지 않고 승리한 장수를 명장이라 부르는 법이다.
오히려 소파에 오르지 않아도 민성이의 손은 곧 스위치에 닿을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할지 그게 걱정이었다. 아이와 다투지 않으면서 그에게 이로운 쪽으로 일을 만들어가는 것, 그건 아마도 평생의 숙제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