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09일째, 민성이 D+658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나는 딸을 낳고 싶었다. 아내도 그랬다. 우선 나는 딸에 대한 아주 막연한, 추상적인 로망이 있었다.
아내를 닮아 엄청 예쁜데 애교까지 많은, 그래서 내 애간장을 매일 아이스크림처럼 녹이는 딸에 대한 로망이. 거기에 아내 말고도 날 사랑해주는 여자를 만나고픈 욕심도 있었다.
3녀 중 장녀인 아내는 조금 다른 이유로 딸을 바랐다. 아내와 막내 처제는 8살 터울인데, 나이차가 큰 형제자매가 보통 그러하듯이, 아내도 어렸을 때부터 동생을 많이 챙겨야 했다.
자신도 딸이었고 자신보다 더 어린 딸을 보살핀 경험도 있으니 딸은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다고, 아내는 늘 말해왔다. 반면 아들은 어떻게 키워야 할지 도통 모르겠고, 그래서 두렵다고 했다.
첫 초음파 때 아이 가랑이 사이의 그것 - 예비 엄빠들이 미사일이라고도 부르는 - 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민성이가 딸인 줄 알았다. 한동안은 그랬다.
두 번째 사진은 명확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진료실 문을 닫고 나오며 아내와 나는 둘 다 아쉬움이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이 뭐 어때서요. 아기가 다 들어요." 진료실 문 앞에 있던 간호사가 우리 부부를 나무라듯 말했다. 우리는 그 이후 단 한 번도 한숨을 내쉬거나 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장난으로도.
그때 그 미사일이 세상에 나온 지 1년 하고도 9개월이 지났다. 나는 요즘 민성이에게 뽀뽀를 해달라고 조르는 날이 부쩍 늘었다. 아이가 노는 걸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딸이어도 예뻤겠지만, 아들인 민성이도 너무 사랑스럽다. 아이를 낳기 전엔 몰랐다. 아들이, 그것도 심지어 날 많이 닮은 아들이 이렇게 사랑스러울 줄은.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선배님들의 말, 절절히 공감 가는 요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