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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n 15. 2021

해수욕장은 엄빠도 처음이라(2)

휴직 411일째, 민성이 D+660

'할아버지, 여기 경치가 꽤 괜찮네요.' / 2021.6.13. 군산 산타로사


민성이는 물보단 진흙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의 발등을 간지럽히며 뭍 위로 들고 나는 바닷물은, 아이에겐 아직 경계의 대상이었다. 민성이는 아예 모래사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진흙놀이를 시작했다.


민성이는 재미있게 놀았지만 얼마 놀진 못했다. 본인도 싫증을 냈지만, 아이가 감기에 걸릴까 우리가 불안해서 마냥 놀릴 수가 없었다. 진흙투성이가 된 민성이는 이내 아내와 날 향해 손을 뻗었다. 


우리의 첫 번째 실책은 우리 옷을 챙겨 오지 않았다는 거다. 수영복은커녕 여벌 옷도 챙겨 오지 않은 우리 부부는 민성이를 제대로 안아줄 수 없었다. 결국 아내가 엉덩이를 뒤로 살짝 빼고 진흙과 함께 민성이를 들어 올렸다.


아이 옷을 갈아입히려면 일단 씻겨야 했다. 샤워실은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았고, 화장실 옆에 딸린 조그만 수도 - 피서객 발에 묻은 모래를 씻기 위한 용도의 - 로 민성이의 모래를 털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물은 찼다. 한여름이라면 문제 될 게 없었겠지만, 6월의 바다는 꽤 쌀쌀했다. 야외에서 민성이 옷을 벗기고 찬물을 대니 아이가 깜짝 놀라며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가녀린 아이 몸에 수건을 덮고 가방을 열어보니 작은 반바지 하나만 덩그러니 담겨있었다. 아내가 분명 챙겼다고 했는데! 그녀에게 물으니 차에 두고 왔단다.


차는 해수욕장에서 서너 블록은 떨어진 공영주차장에 있었다. 부리나케 내달렸다.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크록스에서 바닷물이 새어 나왔다. 달리면서 생각했다. 옷이 왜 가방이 아닌 차에 있는 거지?


아마도 아내는 민성이가 모래사장만 조금 거닐다 올 테고, 그럼 집에 가기 전에 차 안에서 편히 옷을 갈아입히면 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민성이가 모래를 뒤집어쓸 줄은 그녀도, 나도 그때는 예상하지 못했다.


왜 옷을 차에 두고 왔는지를 따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 아들이 발가벗은 채로 벌벌 떨면서 화장실 기저귀 교환대에 앉아있다는 게 중요했다. 육아휴직 이후 가장 빨리 달렸던 것 같다.


손에 조그만 아이 옷을 들고 화장실에 가보니 민성이는 수건 한 장을 두른 채 쌀과자를 베어 물고 있었다. 민성아 미안해. 너와 함께 하는 해수욕장은 엄마 아빠도 처음이라. 다음엔 확실히 준비할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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