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12일째, 민성이 D+661
근래 민성이랑 있다 보면, 예상치 못한 아이의 기억력에 깜짝 놀란다. 가장 최근 일로는 거북이 사건이 있다. 우리 부부는 요즘 거의 매 주말 민성이를 데리고 국립생태원에 간다.
충남 서천에 위치한 생태원은 동물원과 식물원을 합쳐놓은 느낌인데, 널찍하고 싱그럽다. 더욱이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군산에 와서 좋은 점을 꼽으라 한다면, 주저 없이 한 손가락은 이 생태원에 할애할 것이다.
지난 주말, 평소처럼 생태원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웬일로 열대관 거북이가 깨어있었다. 우리가 그곳을 찾을 때마다 거북이는 늘 몸을 웅크린 채 숙면을 취하고 있었고, 민성이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아이는 신이 나 발을 동동 구르며, 오이며 호박 같은 채소를 천천히 씹어먹고 있는 거북이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날, 민성이는 그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민성이와 집에서 물고기 스티커를 가지고 놀고 있는데, 아이가 거북이 스티커를 보더니 돌연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냠냠 소리를 냈다.
고래나 상어, 다른 물고기 스티커를 붙일 땐 그러지 않았다. 유독 거북이를 집을 때만 그랬다. 처음엔 그게 뭔가 싶었다. 그러다 지난 주말 그 거북이가 떠올랐다. 아, 그거였구나!
놀랄 새도 없이 민성이는 또 다른 사건으로 우리 부부를 감탄케 했다. 우리 집 민성이가 읽는 책 중엔 길고 짧은 애호박과 가지, 고추가 등장하는 그림책이 있다. 아이에게 길이의 개념을 가르쳐주기 위한 책이다.
민성이는 노는 게 지루해지면 아주 가끔 읽고 싶은 책을 가져올 때가 있는데, 이번 주 언젠가 그 책을 뽑아와서 내 앞에 앉았다. 평소처럼 앞에서부터 책을 읽어주고 있는데, 돌연 고추 파트에서 아이가 눈을 찡그렸다.
눈을 찡그릴뿐만 아니라 혀를 내밀며 손바닥을 내저었다. 그래, 고추는 맵지! 아내와 나는 귀여워 죽을 것 같은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아니, 민성이가 고추를 먹어봤나?
추정컨대, 아마도 어른 반찬을 먹다가 고추가 들어간 음식을 입에 댄 적이 있나 보다. 누군가 "안 돼, 고추는 매워"라 했을 테고, 그래서 그게 고추라는 걸, 고추는 맵다는 걸 알게 되지 않았을까. 점점 사람이 되어가는 아이 모습에 놀라고 또 놀라는 요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