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13일째, 민성이 D+662
어제(16일)는 날씨가 정말 좋았다. 내가 휴직을 하고 마주한 날씨 중에 최고가 아니었을까, 감히 단언해본다. 이런 날은 민성이랑 밖에서 열심히 노는 것이 날씨에 대한 예의다.
놀이터엔 우리말고도 날씨에 예를 다하려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많았다. 미끄럼틀 하나에 아이 네다섯 명은 매달려있었던 것 같다. 가만히 있을 민성이가 아니었다. 그 틈바구니로, 아이는 과감히 돌진했다.
마음이 너무 급했던 걸까. 미끄럼틀로 달려가는 아이 발에 민성이 또래 여자아이가 걸려 넘어졌다. 다행히 옆에 엄마가 있어 바닥에 세게 부딪히진 않았지만 보호자로선 상당히 겸연쩍은 순간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민성이를 붙잡고 말했다. "민성아 조심해야지. '친구야 미안해' 하자." 분위기는 다시 놀이터에 걸맞게 말랑말랑해졌다. 생각하고 말한 게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말이 튀어나왔다.
작년 가을이었나. 문득 예전에 민성이가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의 마스크를 낚아챘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아무 말도 못 하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 이후 한동안은 놀이터에 가는 게 조심스러웠다. 특히 아이들이 많을 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젠 괜찮다. 아이와 놀이터를 가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엄마도 알고 있다. 그러니 대처만 잘하면 된다.
어느새 나도 능글맞은 아빠가 됐다. 엄마뿐인 놀이터에 가서 아이 손을 잡고 미끄럼틀을 오르내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엄마들은 내가 낯설지 몰라도, 나는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어제는 아내가 오랜만에 야근을 해서 홀로 민성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웠다. 아이가 밥을 먹을 때 나도 밥을 먹고 후식으로 아이와 함께 수박도 나눠 먹었다. 이젠 거의 친구와 둘이 밥을 먹는 느낌이다.
수박을 다 먹고 곧바로 민성이를 씻기러 욕실로 향했다. 어느새 아이는 내가 머리를 감겨도 울지 않게 됐다. 당연히 나도 힘들지 않다. 잘 때도 아이는 침실에서 이것저것 건드려보다 내 옆에 와서 얌전히 잠이 든다.
육아휴직을 한 지 1년 하고도 두 달째, 민성이도 참 많이 컸지만 나도 꽤 컸다. 정신적으로 성숙했다기 보단 아이를 돌보는 기술, 잔재주가 늘었다. 내게도 짧지 않았던 시간, 그래도 뭔가 남긴 게 있어 다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