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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n 26. 2021

아내의 왈츠

휴직 422일째, 민성이 D+671

'제가 직접 만든 모자랍니다. 어때요. 예쁘죠?' / 2021.6.24. 어린이집


군산에 살아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아내의 퇴근이 빠르다는 거다. 그녀는 6시 칼퇴를 할 때가 많은데, 집에 오면 6시 20분쯤 된다. 20분 만에 도착이라니. 서울보단 훨씬 한산한 군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내는 퇴근하면서 내게 메시지를 보내는데, 민성이와 놀다 핸드폰을 열어보면 메시지가 10개씩 쌓여있곤 한다. '숑아 어디 있니!' '숑아 보고 싶어ㅠㅠ' '엄마가 간다. 조금만 기다려!' 대충 이런 식이다.


현관 도어록에서 비밀번호 눌리는 소리가 들리면 민성이는 총알같이 뛰어나간다. 그리고 그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해맑은 얼굴로 엄마를 맞아준다.


아내가 말하길, 바로 그때, 환한 미소로 그녀 품에 안기는 민성이를 보면 피로가 싹 풀린단다. 며칠 전 이런저런 일로 회사에서 고통받고 돌아온 그녀는 한동안 아이를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민성이를 낳기 전엔 아내가 그렇게 애정표현(!)을 잘하는 사람인 줄 몰랐다. 물론 아내가 날 사랑한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지만, 지난 10여 년 간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건 손에 꼽는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에겐 그 말을 아끼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말은, 민성이에겐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호흡 곤란에 시달리는 나와 달리. 하기야 내 눈에도 그가 저리 예뻐 보이는데 아내는 오죽할까. 


어제(25일) 민성이가 잠들기 전, 아내가 잠시 화장실에 가니 그는 내 귀에 대고 엄마 소리를 100번 정도 외쳤다. 그리고 아내가 나오자마자 민성이는 개구리 자세로 폴짝 뛰어 그녀 품에 안겼다.


"이러니까 꼭 민성이랑 왈츠를 추는 것 같아." 잠옷 차림의 두 남녀는 그렇게 거실 매트 위를 몇 바퀴 돌았다. 그녀가 떼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행복이 묻어난다. 기분 좋은 금요일 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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