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Jun 25. 2021

속단에 대하여

휴직 421일째, 민성이 D+670

'아이 신나. 민성이 신나요!' / 2021.6.23. 어린이집


민성이 하원 시간, 종종 어린이집 앞에서 같은 반 친구와 그의 엄빠를 만난다. 대개는 어린이집 문 앞에서 좀 서성이다 헤어지지만, 가끔 놀이터까지 같이 가기도 한다.


어제(24일)도 민성이는 반 친구와 함께 하원했다. 선생님의 제보(?)로 알게 된, 그가 크나큰 관심을 보이는 여자 아이다. 역시나,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민성이는 한시도 그의 여사친과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민성이의 친구는 그네를 좋아했다. 아이가 신나게 그네를 타고 있는데, 갑자기 민성이가 그녀에게로 돌진했다. 아, 친구가 그네 타는 걸 보니 자기도 타고 싶어졌구나. 육아휴직 14개월 차답게 촉이 왔다.


그네를 두고 연인끼리 다투는, 엄빠 간에 민망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막아야겠다 싶었다. 냉큼 달려가서 아이의 손을 잡고, 안 돼, 라고 말하려는 순간 민성이는 손을 뻗어 친구의 그네를 밀어주었다.


"와, 민성이 그네 밀어주는 거야?" 아이 엄마는 민성이를 치하하며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었다. 민성이를 잡으려던 나의 손은 민망하게 허공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안 된다고 말해야 할 때가 많다. 최대한 줄인다고 줄이는데도 그렇다. 안 된다는 말엔 관성이 있어서, 경계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입에 '민성이 안 돼'가 붙는다.


그러다 보면 민성이가 걸어도, 뛰어도, 앉아도 안 돼라고 말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가 친구에 다가가도 본능적으로 안 된다고 한다. 사실 아이는 친구를 쓰다듬어주려 했던 건지도 모르는데.


어제 민성이가 친구의 그네를 밀어줄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자기가 타겠다고 친구의 그네를 잡아당기며 울고 떼쓰는 모습만 봐왔기 때문에, 그걸 말리려던 내 판단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편협한 합리성이랄까. 


아이를 속단하지 말아야겠다, 다시 한번 생각했다. 입이 근질근질거려도 끝까지 아이를 기다려야지, 그리고 제일 마지막 순간에 말을 해야지 생각했다. 민성이의 예쁜 선의가 상처 받지 않도록. ###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의 건강검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