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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l 07. 2021

폐렴 전쟁(2)

휴직 433일째, 민성이 D+682

'할머니, 제 가르마가 왜 2대 8이 되어있죠?' / 2021.7.6. 부모님 집


낮에 민성이를 재우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평일엔 어린이집을 보내니 낮잠 재울 일이 없다. 주말엔 아내가 업어서 재운다. 평일 대낮에 아이와 나란히 눕기는 거의 반년만이었다.


불행히도 그 반년 사이에 민성이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그는 자지 않았다. 민성이는 더 이상 내가 누워있으면 옆에 와서 뒹굴뒹굴하다 얌전히 잠이 드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일단 그는 내가 누워있건 말건, 자기 방에 있는 물건이란 물건은 죄다 꺼내놓았다. 그리고 아빠를 정말 백 번은 불렀다. 자기가 한 예쁜(?) 짓을 좀 보라는 뜻이다.


민성이는 이제 자기 방에만 있지 않았다. 예전과 달리 방문 따위는 매우 쉽게 열고 닫는 그이기에, 내가 반응이 없으면 그냥 거실에 나가서 이것저것 만지고 놀다가 다시 들어오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낮잠에 대한 강한 의지로 모르쇠 전략을 펼쳤다. 하지만 아이는 육탄공세로 맞섰다. 손으로 누워있는 내 얼굴을 때리고 발로 몸을 걷어찼다. 난 몸과 마음이 모두 만신창이가 됐다.


그날 아내는 민성이 걱정에 일찍 퇴근했다. 그녀가 왔을 때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고작 반나절 만에 나는 그 정도로 지쳐있었다. 


민성이는 결국 오후 4시가 넘어 아내 등 위에서 잠이 들었다. 업히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치더니, 몸이 아내의 등에 닿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몸도 안 좋은데 피곤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다음날, 아이는 기침이 확실히 줄었다. 열도 나지 않았다. 전날보다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소아과로 향했다. 민성이 낮잠 이불도 다시 차에 실었다. 


그리고 30분 후 나는 다시 낮잠 이불을 우리 집 거실에 던져놓았다. 집은 전날보다 더 엉망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민성이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틀 정도는 더 집에 있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 이 기분. 정확히 반년 전 그 기분이었다(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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