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34일째, 민성이 D+683
생각해보면 아이가 며칠 어린이집에 안 가는 것뿐이다. 아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아프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픈 아이를 집에서 정성껏 돌보는 건, 육아휴직 중인 나의 당연한 의무이다.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머리로는 다 알고 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씻지 못한 채, 전혀 낮잠을 잘 생각이 없는 아이 옆에 누워 있다가 얼굴을 몇 대 얻어맞다 보면 그런 의젓한 생각은 곧바로 모습을 감춘다.
아이를 잘 돌보려면 우선 나를 잘 돌봐야 한다. 주양육자인 내 몸과 마음이 엉망이면, 당연히 아이에게도 잘해줄 수 없다. 가정보육은 길고 긴 터널 속을 지나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멘탈을 강철처럼 벼려야 한다.
지난주 금요일, 민성이가 조금 콧물을 흘리더니 하루 이틀 만에 병원에선 폐렴 초기 증상이 있다고 했다. 민성이의 기침은 점점 심해졌고, 결국 난 아이와 둘이 집에 남겨졌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첫날은 정신을 못 차렸다. 다행히 다음날부턴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이 터널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금방 빠져나오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으니 운전대를 잡은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설거지나 빨래는 계속 미루면 감당이 안되니 민성이를 옆에 두고 하거나 같이 했다. 아이 밥을 먹일 때 나도 밥을 먹었다. 낮잠을 재우려 노력하되, 아이가 자지 않아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했다.
아이가 좀 자줘야 내가 좀 씻고 쉴 수도 있지만 그게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루 종일 씻지 못하면 또 우울의 늪에 빠지니, 민성이를 화장실 앞에서 놀게 한 뒤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아이가 날 힘들게 하려고 안 자는 게 아니다. 하지만 애 잘 때 해야지 하고 안 씻고 안 먹다 보면, 그러다가 결국 애가 안 자서 못 씻고 못 먹게 되면 괜히 아이를 미워하게 된다. 그래서 난 나대로 방법을 찾았다. 아이를 미워하지 않을 방법을.
민성이의 기침은 점점 잦아들고 있다. 민성이 또래 아이들이 폐렴에 걸리면 거의 입원해야 한다던데, 다행히 며칠 집에서 쉬면서 약을 챙겨 먹은 걸로 크게 호전됐다. 아이는 점점 더 괜찮아질 것이다.
폐렴 전쟁이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아이의 폐렴 이야기는 온데간데없고 육아휴직을 14개월이나 했는데도 여전히 미성숙한 아빠의 자아 전쟁에 대한 글이 됐다. 늘 그래 왔지만, 아이가 아프면 그도, 나도 더 성장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