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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l 09. 2021

아들에게 출근합니다

휴직 435일째, 민성이 D+684

'흐음. 할머니 이거 맛 괜찮네요.' / 2021.7.8. 부모님 집


결국 이번 주는 쭉 가정보육을 하기로 했다. 아이는 다음 주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좋겠다고, 어제(8일) 소아과 원장님은 말했다. 민성이 상태는 많이 호전됐지만, 확실히 하자는 차원이다.


당연히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아내도 그러길 원했다. 그러니 나만 조금 더 고생하면 됐다. 속으론 이만하면 등원해도 괜찮은 거 아닌가 싶었지만 그냥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나는 지금 일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육아휴직 1년 하고도 3개월째, 나와 내 아들은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먹고사는 중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했다. 민성이는 아기니까 그렇다 치고, 내가 일하지 않는데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민성이를 돌보는 일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아내와 내가 합의했기 때문이다.


기억이 흐릿하지만(어느새!) 내가 일할 때를 떠올려본다. 일을 하는 게 즐겁고 보람찰 때도 있었지만, 하기 싫을 때도 많았다. 모든 취재가, 인터뷰가, 기사 쓰기가 유쾌했던 건 아니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하고, 그러니까 한다. 하기 싫어도, 힘들어도 결국은 해낸다. 휴직 이전엔 나의 시간을 회사에 썼고, 지금은 민성이에게 쓴다. 기자들 표현을 쓰자면, 출입처가 바뀐 것뿐이다. 지금 일도, 힘들어도 해내야 한다.


아내가 출근하고 민성이와 둘이 남겨지면, 그때부터 내 일이 시작된다. 아내도 9시부터 6시까지 일하고, 나도 9시부터 6시까지 일한다. 똑같다.


어느 일이 더 쉽고 편한가를 논하는 건 의미가 없다.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민성이를 보는 게, 회사를 다닐 때보다 더 쉽고 편해야 할 이유는 하등 없다. 하지만 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독박 육아 사흘째, 아이가 등원할 때보단 훨씬 힘들지만, 그래도 점점 할만해지고 있다. 어제 민성이는 사흘 만에 처음으로 낮잠도 잤다. 오늘도, 내일도 난 민성이한테 출근한다. 오늘도, 내일도 잘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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