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36일째, 민성이 D+685
어제(9일) 아내가 퇴근하자마자 집을 나섰다. 일단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 혼자 나가서 뭘 할 수 있을까. 친구가 있으면 술이라도 한 잔 하자고 할 텐데, 애석하게도 나는 군산에 친구가 없다.
영화를 보기로 했다. 마침 가까운 극장에 6시 영화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마블 영화, 금요일 6시인데도 좌석이 여유로웠다. 코로나는 1년 넘게 영화관을 한적하게 만들었다.
"영화 좀 보고 올게." 5시 반에 아내가 퇴근하자마자 그렇게 말하고 집을 나섰다. "응." 그녀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내는 내가 지쳤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보육 5일 차였던 어제, 나는 벼랑 끝에 몰려있었다. 안 그래도 힘든 마지막 날이었는데 여러모로 악조건이 겹쳤다. 민성이는 또 낮잠을 자지 않았고, 코로나 백신 접종을 맞은 엄마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아내가 출근한 8시 반부터 오후 5시 반까지, 나는 단 한순간도 아이와 떨어질 수 없었다. 오후 산책을 다녀와서 민성이가 손을 씻지 않았을 때, 손 씻고 싶으면 아빠 불러, 하고 난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난 겁에 질려 방으로 달려오는 아이를 손으로 밀치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얼마간, 내가 문을 열고 나왔을 때 그는 울면서 손을 씻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난 감정 조절에 실패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핸드폰으로 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집 앞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을 샀다. 일할 때 자주 먹었던 '소맥'을 먹고 싶었다.
문을 닫을 때 아이의 겁에 질린 표정이 자꾸 떠올랐다. 집에 들어가기 싫었지만 난 집 말고는 갈 곳이 없었다. 그렇게 자기 최면을 열심히 걸어놓고, 고작 가정보육 일주일 만에 멘탈이 무너지다니.
집에 들어왔을 땐 주방에 그릇이 잔뜩 쌓여있었고, 아내는 아이 옆에서 잠들어있었다. 그녀를 깨워 곱창에 소맥을 마시면서 힘들단 얘기를 털어놓으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긴 하루, 긴 한 주가 끝나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