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Jul 16. 2021

끼리끼리 나란히

휴직 442일째, 민성이 D+691

'선생님, 얘네들 안 무는 거 맞죠? 그렇죠?' / 2021.7.14. 어린이집


민성이의 '최애' 장난감은 뭐니 뭐니 해도 자동차다. 사실 아이가 장난감을 좀 가지고 논다 싶을 때부터 자동차는 1위를 뺏긴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아주 잠깐 레고 블록이 왕좌를 위협했나 그랬다.


우리 집에는 자동차 7대와 비행기 1대가 있다. 민성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이 탈것들을 의자나 테이블, 공기청정기 따위에 차례로 올렸다 다시 내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기청정기의 제일 밑부분에서 소방차를 출발시켜 정점을 찍고, 반대쪽으로 다시 내려오는 것이다. 이걸 탈것의 개수만큼, 즉 여덟 번 반복한다. 그래서 아이만큼이나 나도 이 놀이를 좋아한다.


놀이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주차다. 차는 반드시 나란히 세워져야 한다. 한 대라도 삐져나와선 안 된다. 포개져도 안 된다. 주차가 끝나면 민성이는 늘 환히 웃으며 아내와 날 부른다. '이것 좀 보세요!'라는 듯이.


어제(15일)는 오랜만에 아내가 회식을 해서 민성이와 둘이 집에 있는데, 잠옷을 갈아입은 민성이가 또 자동차를 일렬로 주차해놓고 나를 불렀다. "우와, 민성이가 이렇게 줄 세워놨네!"


100번도 넘게 했을 그 말을, 버튼을 누르면 곧바로 튀어나오는 기계음처럼 내뱉으며 아이를 재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민성이가 책을 하나 꺼내 내 앞에 내민다. 책 제목은 '끼리끼리 나란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공은 공끼리, 자동차는 자동차끼리, 로봇은 로봇끼리 정리하면 방이 깨끗해진다는 매우 교훈적인 그림책이다. 자기가 그렇게 정리를 했다는 뜻이다. 참나.


아이들은 뭐든지 나란히 세우는 걸 좋아한다고 어디서 들었는데, 민성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끔은 자동차 대신 책이나 장난감 동물을 테이블 위에 줄지어놓기도 한다. 


저녁 9시, 민성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오니 그의 애마들이 일렬로 서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눈을 비비며 또다시 끼리끼리 나란히 자동차를 받쳐놓을 민성이 모습에 얼굴에 미소가 서린다. ###

매거진의 이전글 추피가 진짜 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