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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l 17. 2021

밀양 기행(1)

휴직 443일째, D+692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 저 정말 잘하죠?' / 2021.7.15. 어린이집


엄마에겐 세 명의 여동생과 세 명의 남동생이 있다. 그중 여동생 둘, 나에겐 이모 둘이 경남 밀양에 산다.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그녀들이 어쩌다 그 먼 곳에 자리를 잡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거리는 멀지언정 그들의 자매애는 견고하다.


이번 주말, 민성이를 데리고 밀양에 가기로 했다. 엄마와 둘째 이모는 거의 매일 통화를 하는데, 이모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엄마를, 그리고 이번엔 나와 민성이까지 밀양에 초대했다.


군산에서 차로 세 시간 거리, 22개월 아이와 떠나기엔 쉽지 않은 거리였지만 엄마에게 그러자고 했다. 그녀가 좋아할 건 당연했고, 나도 이모들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예쁘게 자란 아들 자랑도 하고 싶었고.


대신 아내는 두고(!) 가기로 했다. 내가 1년 넘게 애를 키워보니 알겠다. 뻔하다. 민성이를 데리고 밀양을 다녀오는 일은 분명 고될 것이다. 누군가는 분명 집을 떠날 때부터 돌아오는 순간까지 아이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


더욱이 수발은 집에서보다 훨씬 힘들다. 우린 키즈카페로 떠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내가 간다면 그 수고로움은 200% 그녀의 몫이다. 주변에서 도와준다고 해도 아이가 엄마를 더 찾으니 분명 그렇게 된다.


아내가 고생길에 올라야 하는 이유는 시어머니가 차로 세 시간 거리에 있는 동생을 보러 가고 싶어서, 그리고 남편이 이모를 보러 가고 싶어서다.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아내에게 밀양행 티켓을 권하는 게 얼마나 폭력적인 일인지 알 수 있다. 


아내를 두고 가면 모든 게 해결된다. 엄마와 나는 사랑하는 동생과 이모를 보고, 민성이에겐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아내는 군산에 와서 거의 처음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출발일이었던 어제(16일), 민성이 어린이집은 선생님들의 코로나 백신 접종으로 휴원했다. 나는 오전에 민성이를 보면서 짐을 챙겼다. 이게 가능한 걸 보면 나도 휴직 1년을 허투루 쓴 건 아닌가 보다.


오후 4시, 아버지가 퇴근하자마자 민성이를 차에 태우고 출발했다. 도착시간은 오후 7시 15분. 관건은 민성이가 차 안에서 3시간을 잘 버텨주는가였다.


첫 1시간은 민성이가 잠을 자서 편하게 액셀을 밟았다. 제대로 낮잠을 못 자 그도 피곤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잠들기에 세 시간은 너무 길었다. 엄마 아빠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민성이가 눈을 떴다(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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