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41일째, 민성이 D+690
집에 추피를 들인 게 지난 2월, 벌써 다섯 달 전이다(추피가 왔다). 거의 반년 동안 추피 시리즈는 우리 집 책장에 고스란히 꽂혀있었다. 책장에서 책을 한 번이라도 빼본 게 정말 손에 꼽는다.
민성이가 추피를 읽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읽어달라고 하기 시작했다. 나와 달리 늘 새로운 걸 시도하는 아내가 포기하지 않고(!) 책을 꺼내 읽어줬고, 아이가 거기에 반응한 게 1, 2주쯤 됐다.
50권이나 되는 책을 다 좋아하는 건 아니고, 그중 서너 권 정도를 특히 좋아한다. 추피가 할아버지와 산책을 다니면서 각종 탈것을 둘러보는 이야기, 추피가 그네를 타다 다친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나도 덩달아 추피의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고 있는데, 너무나 있을 법하고 공감되는 내용이 많아 피식거릴 때가 많다.
다섯 달 전 그 전설의 추피를 받아봤을 때 느낌은 사실 그저 그랬다. 다들 추피 지옥이라는데, 도대체 이 밍밍하고 심심한 이야기를 아이들은 왜 좋아하는 걸까 싶었다.
그런데 아이를 조금 더 키워보니까 알겠다. 내 아이가 얼마나 추피 같은지. 추피는 비가 오니 나가겠다 하고, 우비와 함께 쓸 모자를 고르다 보니 날은 개버렸지만, 문 앞에 생긴 물웅덩이를 보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그런 추피의 모습이 저 같은지, 책을 읽어줄 때마다 민성이는 얌전히 내 앞에, 혹은 내 옆에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다. 책을 읽고 있는 밤톨 머리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아이의 독서 열정은 자기 전에 정점을 찍는다. 최대한 자는 시간을 늦추기 위한 꼼수 같기도 하지만, 요즘 그는 자기 전에 추피 책을 10권 가까이 자기 침실로 가지고 간다. 그 모습이 어이없어 매일 밤 아내도, 나도 웃는다.
마음에 드는 내용이면 한 번 읽는 걸로는 당최 그칠 줄 모르는 그를, 아내는 책벌레라고 부른다. 책벌레라니. 민성이 이미지와는 조금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그건 그거대로 충분히 사랑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