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Jul 19. 2021

밀양 기행(3)

휴직 445일째, 민성이 D+694

'물고기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맛있는 밥 줄게!' / 2021.7.17. 밀양 이모네 집


엄마는 민성이가 엄마가 없어서 얌전한 거라고 했다. 떼쓸 대상이 없어서 아이가 떼를 쓰지 않는다는 거다. 진짜 그래서인진 모르겠지만, 민성이는 밀양에 머무는 사흘 동안 확실히 차분했다.


그는 떼는 쓰지 않으면서 예쁜 짓은 많이 했다. 잘 놀고, 잘 먹고, 잘 웃었다. 민성이 때문에 어른들도 몇 번을 웃었다. 아들 자랑하러 밀양까지 온 보람이 있었다. 


밀양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민성이를 재우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내와 달리 나는 아이 옆에서 잠든 적이 별로 없었다. 새벽에 일어났는데 아내 생각이 났다. 그녀는 매일 이렇게 피곤했던 거구나.


이모가 정성껏 끓여준 전복죽을 먹고 아침 9시쯤 출발했다. 이모는 단풍이 들면 경치가 더 기가 막힐 거라면서 가을에 또 놀러 오라고 했다. 그럴 것 같았지만 자신이 없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내 휴직이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다시 3시간을 달려 군산에 도착했다. 아내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기에 또 주방이 난리겠구나 싶었는데, 그녀는 내 우려를 보란 듯이 깨트렸다. 깔끔한 주방엔 새로 만든 반찬이 잔뜩 쌓여있었다.


대충 짐을 풀고 아내가 그녀의 아들과 극적인 상봉을 즐기는 사이, 잠깐 침대 위에 누웠다가 그 길로 2시간을 곯아떨어졌다. 장거리 운전은 역시 자주 할 게 못 된다.


일요일 저녁, 나는 밀양에서 민성이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했고, 그녀는 군산에서 홀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야기했다.


아내는 처음으로 남편도 아들도 없는 곳에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그동안 얼마나 자기 자신을 잃고 살았는지 깨달았다고 했다. 출산 후 오롯이 민성이 엄마로만 살았던 그녀였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다.


나와 부모님에게도, 그녀에게도 모두 의미 있었던 사흘이었다. 민성이에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도 좋았을 거라 믿는다. 여러모로, 휴직을 하고 나서 손에 꼽을 만큼 기억에 남을 시간이었다. ###

매거진의 이전글 밀양 기행(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