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48일째, 민성이 D+697
연일 찜통더위다. 종일 라디오에서 덥다 덥다 해도 민성이를 데리러 나갈 때까진 믿지 않았는데, 집을 나서는 순간 알았다. 밖은 지옥이었구나. 집에서 5분, 어린이집까지 그 짧은 거리를 걷는데 등줄기에서 땀이 흘렀다.
이 날씨에 산책을 할 수도 없고, 마침 아내도 야근을 해야 한다기에 겸사겸사 민성이 하원 직후 부모님 집으로 피신했다. 확실히 수요일쯤 아이를 데리고 엄마 아빠 집에 가면 숨통이 트인다.
몰랐는데, 어제(21일)가 복날이었단다. 엄마가 돼지고기를 삶고 있길래, 뭔가 해서 물었더니 그렇단다. 엄마가 해준 밥을 배불리 먹고, 냉장고까지 털어서 한 손엔 반찬을, 다른 한 손엔 민성이를 안고 귀가했다.
저녁을 부모님 집에서 해결했으니 이제 남은 건 민성이를 씻기고 재우는 일뿐이었다. 물론 둘 다 만만찮은 일이지만 이래 봬도 육아휴직 짬밥만 1년 넘게 먹었다. 그 정돈 충분히 할 수 있다.
머리 감을 땐 어김없이 울음바다였지만, 나머진 괜찮았다. 별안간 욕실 의자에 꽂혀서는 그곳에 앉아 한참을 낄낄거리길래, 잽싸게 몸을 씻겼다. 밖에 나와 몸에 로션을 바르는 것도, 옷을 입히는 것도 순조로웠다.
취침 전 마지막 끝판왕은 양치질이다. 그나마 아내와 양치를 할 땐 덜한데 내가 할 땐 민성이가 울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는 늘 내게 팔다리가 묶인 채 강제로 양치를 당했다.
그래, 이것만 하면 이제 잘 수 있어. 스스로를 다독이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민성아, 아 해봐. 양치하고 아빠랑 책 읽고 자자." 영혼이 1그램도 들어있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그때, 매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간식 테이블에 앉아 칫솔을 물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입을 쩍 벌리는 게 아닌가. 아 해보라는 말에 진짜로 아기가 아 하고 입을 벌리자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육아휴직을 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감동은 그렇게 예상 못한 곳에서 찾아온다. 아빠가 양치를 시켜줘도 괜찮다는 걸 드디어 알아챈 건지, 아니면 단순히 기분이 좋았던 건진 모르겠다. 가끔이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보람이 있다. 선물처럼, 아이가 내게 보람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