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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l 23. 2021

악어와 생태(원)

휴직 449일째, 민성이 D+698

'아, 다 먹었다.' 굳이 곰돌이 앞에서 곰돌이를 안고 간식을 드셔야 한다던 강민성 어린이. / 2021.7.22. 우리 집


수많은 동물 중에 민성이가 제일 먼저 말한 건 악어였다. 왜 악어였을까. 악어를 실제로 본 적도 없고, 딱히 그림책에도 등장하지 않았으며, 집에 악어 인형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통 모르겠다.


지금도 길을 걷다가 민성이가 느닷없이 "악어!"라고 외칠 때가 있다. 갑작스럽긴 하나, 아이를 잘 관찰해보면 주변에 물이 있는 경우 그런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아빠! 저기 물에 악어가 살아요, 라고 의역해볼 수 있다.


그 물은 아파트 주변을 지나는 하천일 때도, 아파트 단지 내 조그만 분수일 때도, 혹은 길가의 물웅덩이일 때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악어가 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럴 때마다 난 말한다. "민성아, 악어가 물에 사는 건 맞는데, 저 물엔 악어가 살지 않아. 악어는 생태원에 가면 볼 수 있어. 엄마 아빠랑 생태원에 가서 본 적 있지?"


부연하자면, 여기서 생태원은 아내와 내가 민성이를 데리고 거의 매 주말 다녀오는 서천 국립생태원을 말한다. 엄밀히는 그곳에도 악어는 없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악어가 있었을 법한 자리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대신 생태원엔 악어를 닮은 커다란 이구아나가 있는데, 아이가 워낙 악어를 찾으니 번번이, 어 저기 악어다 하고 둘러대곤 했다. 같은 파충류이니, 넓게 보면 악어의 친구 격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여하튼 민성이가 악어를 찾을 때마다 내가 악어는 생태원에 있다고 하니, 어느샌가 아이가 말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쌩때!" 전후 맥락을 알아야 더 잘 들리긴 하지만, 그래도 제법 '생태'로 들린다. 귀엽고 기특하다.


아이가 내는 소리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말과 비슷해지고 있다. '캄캄'과 '씨', 그리고 '빠이빠이'까지, 모두 최근 들어 내뱉기 시작한 단어들이다.


복직하기 전에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민성이가 말을 좀 더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맞벌이를 시작하기 전에 말문이 트이면 회사로 향하는 내 마음이 좀 더 편할 텐데. 부디 '생태'가 그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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