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50일째, 민성이 D+699
22개월 민성이는 여전히 기저귀를 갈기 싫어한다. 본인이 기분 좋으면 흔쾌히(?) 기저귀를 갈라며 내 앞에 발라당 드러누울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제(22일)도 어린이집이 끝나고 민성이를 데리고 들어왔더니 기저귀가 묵직했다. 기저귀를 갈자고 했더니 역시나 강하게 손을 내저으며 이리저리 도망다닌다. 명확한 의사 표시다.
그러다 그는 갑자기 거실 벽 앞에 멈춰 서서 벽지를 손톱으로 긁기 시작했다. 내가 황급히 달려갔지만 도배지는 이미 일부 찢겨나간 뒤였다. 아, 여긴 우리 집도 아닌데!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이를 포획한 김에 기저귀도 냉큼 갈아버렸다. 그런데 아이의 저항이 평소보다 더 거셌다. 기저귀를 갈 때 아이가 행복해했던 적은 별로 없지만, 그날은 유독 심했다.
도배지 사건으로 살짝 열이 받은 것도 있고, 전에도 그런 적이 많았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그런데 민성이가 갑자기 제 방으로 들어가더니 다른 기저귀를 포대째 들고 나왔다. 아이는 울고 나는 웃었다.
우리 집엔 여름 기저귀가 두 종류 있다. 하나는 곰이 그려져 있고 다른 하나는 파인애플이 그려져 있다. 더위를 많이 타는 민성이한테 뭐가 맞을지 몰라 아내가 두 가지를 주문해놓은 것이다.
아내는 며칠 전 내게 민성이가 파인애플 기저귀만 찾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딱히 그런 것 같진 않아서 그때는, 그런가, 하고 말았다. 그날 민성이가 울면서 들고 왔던 건 파일애플 기저귀였다. 그것도 통째로.
민성이가 울었던 이유는 그 기저귀 말고 다른 기저귀를 차고 싶다는 거였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자기 마음을 전혀 몰라주는 아빠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한바탕 웃고 난 뒤엔 미안함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아이를 보다 보면 욱할 때가 많다. 감정이 요동치면 시야가 좁아진다. 그날도 나는 민성이 기저귀를 갈면서 머릿속으론 도배지 생각뿐이었다. 육아휴직 15개월 차, 아직도 난 아이 기저귀 하나 제대로 갈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