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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n 17. 2020

지금이 생각날 거야

휴직 48일째, 민성이 D+297

미래의 정리왕, 강민성 어린이. 물론 그는 지금 물건을 넣고 있는 게 아니라 꺼내고 있다. / 2020.06.16. 우리 집


내가 아는 한, 민성이를 닮은 사람은 세상에 둘 있다. 하나는 나, 민성이 아빠고, 다른 하나는 민성이 할아버지, 그러니까 내 아버지다. 아내는 가끔 민성이를 안으며 '아버님, 왜 이렇게 작아지셨어요'라고 장난을 친다.


제대하고, 그러니까 10년도 더 전에, 아버지랑 단 둘이 원룸에서 지낸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는 인천에서 새로 중고차 매매업을 시작해 홀로 방을 얻어 지내셨고, 나는 서울에 있는 학교에 곧바로 복학해야 했다.


둘이 지내기에 원룸은 비좁았다. 가끔 싱크대 밑으로 물이 새, 틈틈이 닦아줘야 했다. 안 그래도 좁은 방에 TV는 또 엄청 컸다. 카드 마일리지로 뭔가는 사셔야 했다고 했다. 거기서 매일 둘이 잤다는 게 용하다.


그날도 부자의 팔이 맞닿은 채 대충 잠을 청하려는데, 아버지는 '우리 둘이 나란히 자는 날이 또 올 것 같으냐'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맞았다. 그 이후로 우리 부자가 한 공간에서 함께 잘 일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나는 학교에서 아내를 만났고, 그녀는 지난해 민성이를 낳았다. 나는 아버지가 되었고,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어제(16일) 거실에서 민성이와 뒹구는데, 문득 그때 아버지가 한 말이 떠올랐다.


요즘은 민성이의 (더) 어렸을 때가 흐릿하다. 휴직 전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지금 저렇게 빨리 기고 툭하면 앉고 서는 애가 마냥 누워있기만 했다는 게 상상이 안된다. 그러나 분명 그때는 그게 일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 이때가 상상이 안될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지금 저렇게 뛰고, 말을 많이 하는 애가 걷지도 못하고, '아빠'도 못했단 말이야? 아이가 커갈수록 그런 일은 반복되고, 또 반복될 것이다.


아버지와 나란히 잠을 잘 일은 앞으로도 별로 없을 것이다. 인천 원룸에서가 마지막이었을 테다. 당시엔 너무 당연하고 익숙해서 잘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꾸 생각나는 일들이 있다. 아이의 매일도 그럴 것이다.


요즘 나는 민성이가 노는 걸 멍하니 바라볼 때가 많다. 어쩜 저렇게 해맑고, 행복해할 수 있을까. 그때 아버지의 예언처럼, 이 날은 분명 또 오지 않을 것이다. 언제고 끄집어낼 수 있도록, 눈과 마음에 잘 새겨둬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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