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62일째, 민성이 D+311
"오빠, 요즘 아기들은 빨래 건조대로 걸음마를 배운대. 이제 보행기를 잘 안 태우잖아." 어제(30일) 출근 준비를 하는 아내가 말했다. 하긴 건조대는 가볍고 잘 밀리니까,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민성이도 건조대를 좋아한다.
아내의 휴가와 검진으로, 주말을 낀 닷새는 편히 지냈다. 아내가 출근하고, 103호엔 오랜만에 우리 부자만 남았다. 민성이 두 번째 이유식을 먹이고, 거실에 앉아 책을 읽는데, 주방에서 '탁탁탁'하는 소리가 들렸다.
탁. 탁탁. 탁탁탁. 고개를 돌린 그곳엔 쓰레기통이, 그리고 그 쓰레기통에 손을 짚고 걸음마를 하고 있는 우리 아들이 있었다. 귀여워서 죽을 뻔했지만, 침착하게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빨래 건조대는 양반이었다. 우리 아들의 첫걸음마 친구는 쓰레기통이 되었다. 요즘 민성이가 부쩍 잘 서게 되면서, 유아용 의자를, 붕붕카를 조금씩 밀고 당기기는 했다. 하지만 저만큼 걷진 못했다.
내 걸음으론 다섯 걸음이나 될까. 그 거리를, 아이는 천천히, 그리고 차분히 한 걸음씩 내디뎠다. 아이의 조심스러운 첫걸음을, 옆에서 직접 볼 수 있었던 건 분명 내 인생에 다시없을 행운이다.
회사에 있던 아내는 영상을 받아보고 까무러쳤다. 장모님은 카톡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 그녀의 프로필에선 손자가 열심히 쓰레기통을 밀고 다닌다. 이 역사적인 장면을 놓치지 않은, 나 자신이 참으로 대견하다.
육아가 외롭고 힘들다며, 아빠가 투덜거리는 동안에도 아이는 꾸준히 자라고 있었다. 팔다리를 아무리 뻗어도 닿지 않던 곳에 닿을 수 있게 됐고, 소파도 제 힘으로 오를 때가 더 많아졌다. 옹알이도 부쩍 늘었다.
고개도, 팔도 못 가누던 아이가 어느새 스스로 몸을 돌리고, 손으로 젖병을 잡는다. 네 발로 기던 아이는 두 발로 서고, 자유로워진 두 팔로 또 다른 일을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인류의 발달사를 지켜보는 느낌이 든다.
아내의 친구가 말하길, 귀여움은 이제 시작이라고 한다. 아니, 저 실룩거리는 엉덩이가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고? 아이의 귀여움을 감당하려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다고, 어제저녁 아내와 나는 마음 단단히 먹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