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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n 21. 2020

민성아, 그거 친구 눈이야

휴직 52일째, 민성이 D+301

'얼음, 땡! 나 잡아봐라' 지구의 무엇과도 놀 수 있는 10개월 강민성 어린이 / 2020.06.20. 우리 집


어제(20일) 오후, 우리 부부는 민성이와 함께 아내의 오랜 친구 집에 놀러 갔다. 그녀는 민성이보다 3개월 빠른 아들을 둔 엄마다. 우리는 놀러 갔다지만, 사실은 쳐들어간 것에 가깝다.


분유가 한 통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내가 아내에게 너무 늦게 고한 탓에, 우리는 민성이 분유가 똑 떨어질 위기에 처해있었다. 분유를 긴급 공수하러 간 곳이 바로 아내의 친구네다.


아내는 분유를 가지러 간 김에 다 같이 그 집에 놀러(쳐들어) 가자고 했다. 수화기 너머로 '화장을 안 했는데', '남편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같은 얘기가 들리는 듯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내 친구 집은 우리 집에서 30분 거리였다. 벨을 누르고 집에 들어가니, 13개월짜리 아이가 두 발로 떡하니 서서 우리를 반겼다. 민성이는 바닥에 앉아 친구를 올려다봐야 했다. 어렸을 때의 3개월 차이는 이렇게 크다.


집은 깔끔했다. 마치 아들을 위해 지은 집 같았다. 모든 생활공간이 아이의 동선, 안전에 최적화돼있었다. 아내의 친구는 뱃속에 아이가 있을 때 집을 사서, 아이를 염두에 두고 인테리어를 했다고 했다.


그 집을 마음에 들어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민성이는 물 만난 고기처럼, 곳곳을 누비며 매우 잘 놀았다. 민망할 정도로 낯설어하지 않았다. 나를 닮지 않았으면, 그 집 아들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민성이는 친구의 장난감은 가지고 놀았지만, 친구와는 놀지 않았다. 그 또래의 아이들은 아직 친구와의 상호작용을 하지 못한다고 들었다. 10개월, 13개월 아이의 옆엔 친구가 있었지만, 없었다.


다만 민성이는 간혹 친구의 얼굴을 만지려 했다. 손가락을 친구 눈에 가져다대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른 넷은 마음을 졸여야 했다. 자기 눈이나 엄마 아빠 눈은 괜찮지만, 친구 눈은 곤란하다. 


시간이 지나면 민성이도 친구 눈은 보기만 해야 한다는 걸 익힐 것이다. 친구를 많이 만나야 그 속도도 빨라질 테니, 자주 쳐들어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절대 민성이보다 아빠가 더 즐거워서가 아니다. 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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