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54일째, 민성이 D+303
미국 드라마 <모던 패밀리>를 틈틈이 다시 보고 있다. 극 중 동성 부부인 미첼과 캠은 릴리라는 아시아계 여자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데, 딱 민성이 또래다. 어느 화에, 그들이 아이 수면교육을 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외국에선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떨어트려 재우는, '분리수면'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미첼 역시 릴리를 방에 따로 재우려는데, 아이가 울자 캠이 안절부절못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내 눈에 들어온 건, 미첼이 아이를 분리수면할 때 쓰던 '육아템'이었다. 아이 방과 거실에 각각 하나씩 설치해, 부부가 멀리서도 아이의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일종의 무전기 같은 거였다.
저거다 싶었다. 2020년을 살고 있는 내가, 11년 전 드라마(시즌 1) 에피소드에 나오는 육아용품에 감탄하고 있었다. 민성이를 홀로 재우는 내게 딱 필요한 건데, 왜 나는 그 생각을 못했을까.
일단 내 주변에선 쓰는 사람을 못 봤다. 얘기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선 저걸 쓸 필요가 없으니 그랬을 것이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주는데, 굳이 멀리서 아이를 지켜보거나 우는 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나.
하지만 난 민성이를 눕히고 문을 닫고 나와버리는 매정한 아빠다. 그야말로 날 위한 거라 할 수 있다. 2020년에 걸맞게, 무전기가 아닌 홈카메라를 샀다. 이제 나는 방문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민성이를 재울 때마다 아이는 방에, 나는 거실에 있어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민성이가 제대로 잠들었는지, 깼는지를 알려면 방문 틈새로 귀를 가져다 대야 했다. 그냥 감으로 때려잡는 거다.
아이가 자나 싶어 문을 열었다가 잠을 깨워버린 적도 많다. 그럼 그날은 우리 둘 다 피곤해지는 거다. 방에 홈카메라를 설치하니, 거실에서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로 민성이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진짜 너무 좋다.
'스마트 육아'의 'ㅅ'에도 못 미칠 수준이란 걸 안다. 하지만 기대 이상의 효과에 기분이 좋아져 시건방을 떨어보았다. 역시 이 길고 긴 육아휴직의 동반자는 시의적절, 적재적소의 '육아템'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