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91일째, 민성이 D+340
나는 전날 육아일기를 써놓고 잔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전날 쓴 브런치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퇴고해, 아침 일찍 글을 올린다. 그렇게 해야 매일 일기를 쓸 수 있다.
아내랑 술을 한 잔 한 날도, 이사 준비로 서울 빈 집에서 홀로 잔 날도 어김없이 그렇게 했다. 하지만 어제(29일)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잤다. 정리라는 게 그렇게 어렵다.
군산으로 이사한 뒤 가구 배치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됐다. 문제는 가구 서랍 안에 있던('짱박아놨던') 각종 물건들이었다. 이사한 김에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어제 했다. 마침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다.
방이 두 개에서 세 개로 늘면서, 방의 쓰임새도 달라졌다. 민성이 침실이 새로 생겼고(민성이 방에서 민성이 재우기), 안방 드레스룸엔 아내의 옷을, 작은 옷방엔 민성이와 내 옷을 몰았다.
그러다 보니 방과 가구, 그 가구 안에 있는 물건들이 다 따로 놀았다. 예컨대, 민성이 침실로 옮겨놓은 거실장에 안 쓰는 전자제품이나 내 추억 물품이 들어있는 식이다. 응당 민성이 방엔 민성이 물건만 있어야 한다.
일단 꺼내놔야 정리가 될 것 같아서, 방의 새 용도에 맞지 않는 물건을 모조리 끄집어내 안방에 쌓아놓았다. 민성이를 재우고 나서 아내와 같이 정리를 시작했다. 둘이 하면 금방일 줄 알았는데, 오만방자했다.
정리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정리를 잘하려면 잘 버리면 된다고. 대학 1학년 때부터 시작한 타지 생활이다. 내 인생에 이사만 몇 번째던가. 이제는 쉽게 버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오만방자한 생각이었다.
분명 안 쓰는 물건인데, 언젠가는 필요할 때가 올 것만 같다. 학창 시절에 받은 편지, 일기를 버리면 내 학창 시절이 사라질 것만 같다. 추억 박스를 열어보는 건 몇 년에 한 번, 새 가구가 오거나, 이사할 때뿐인데도 말이다.
나름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반을 채웠는데도, 여전히 한 짐이었다. 머릿속으론 1000리터 봉투도 채울 것 같았는데. 정리가 잘된 집이 아이에게도 좋다고 한다. 이참에 더 버려보자. 민성이를 위해서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