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Aug 05. 2020

조련사를 조련하는 원숭이

휴직 97일째, 민성이 D+346

'편지를 부칠 땐, 이렇게 봉투 모퉁이에 침을 발라서…' / 2020.08.04. 우리 집


군산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민성이 외할머니와 이모다. 장모님은 대구에서, 처제는 하남에서 먼 걸음을 했다. 당연히 둘 다 민성이를 보러 왔다. 그러고 보니 군산에 이사 오고, 이 집의 첫 손님이다.


모녀는 그제(3일) 저녁 늦게 군산에 도착했다. 그날은 아내가 저녁 약속이 있어 내가 종일 민성이를 본 날이라, 나는 두 사람이 집에 온 것도 모르고 뻗어있었다.


다음날 아침, 민성이는 잠에서 깨자마자 외할머니와 이모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는 그 미소를 하사함으로써 멀리서 이곳까지 온 두 여성의 노고를 치하했다. 아이는 한참을 세 여자에 둘러싸여 희희낙락 거렸다.


그러다 민성이 밥시간이 돼서, 뒤로 빠져있던 머슴이 나섰다.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평소처럼 밥을 먹이는데, 지켜보던 처제가, 언니와 형부는 민성이 밥 먹이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단다.


언니는 아이에게 밥을 줄 때 눈에서 사랑이 묻어나는데, 나는 원숭이 조련사 같다고, 처제는 웃으며 평했다. 아, 다른 사람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난 민성이가 수저를 들지 않으면 밥에 손을 못 대게 한다. 민성이가 (자주 그러진 않지만) 소리를 치거나 짜증을 내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약간 기계적인 것도 같다. 처제는 아마 이런 걸 보고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행여 그녀의 말대로 내가 민성이 조련사라 치더라도, 내 조련 실력이 바닥이라는 건 분명하다. 아이의 숟가락질 실력은 몇 달째 진전이 없고, 밥상머리 예절은 점점 더 얌전함이나 차분함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아이는 요즘 밥을 먹을 때, 밥알이 가득한 손으로 박수를 치고, 머리를 만진다. 또 그 손으로 의자 트레이를 아주 열심히 닦는데, 흡사 비 오는 날 바삐 움직이는 자동차 와이퍼 같다. 그래서 그의 식탁은 늘 아수라장이다.


어쩌면 그가 나를 조련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루 세 번, 매 식사 때마다 내게 점점 더 강한 시련을 줌으로써, 조련을 포기하게끔 조련한다랄까. 처제는 우리 집 원숭이를 너무 쉽게 생각한 걸 지도 모르겠다. ###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 몸은 편한데 마음은 안 편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