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시선, 43
시절마다 유행하는 놀림감이 있고
우리 때는 그거였지
애정결핍
"아니야, 결핍이라 생각하지 마
너는 사랑이 너무 많은 사람일 뿐이야"
산소가 너무 많아도 죽어
우리는 그게 위로가 아니라
안쓰러운 마음이라는 걸 알아듣고 컸어
대학원 다니는 친구는 그런 연구를 한대
외로운 사람들이 타인의 얼굴을 볼 때
그 눈길의 움직임이
정상인과는 사뭇 다르다고
정상인과는
우리는 어려움 겪는 사람의 반대개념을
정상이라곤 부르지 말라고 배웠지
제 가슴팍의 광기를 매일밤
벌집처럼 뜯어내야 하던 사람들이 그 말 듣고는
주먹을 갈기러 올 때까진 괜찮아
정상인 되는 게 꿈인 사람들이 있어
정상인 너거는 모르겠지만
자기 방을 가져보지도 자기 안식처에서 쉬어보지도 못한
애매한 집안의 킁킁이들이
처음 가보는 도시
편의점 앞 새벽 공기를 쏘이고
물풍선처럼 쏟긴 지 머릿속 호르몬들을
허겁지겁 핥아먹을 때에도
옳고 그름은 누가 구분하는 것인지 모르겠고
낙인과 멸시일 뿐이라고,
정상성 같은 개념 따위가 존재해선 안 된다고 주장해 봐
남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내 눈을 빤히 보는
근적외선 센서 앞에 발가벗은
없는 척하고 싶었던 모든 결핍이
춤을 추면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
붉고 더 검붉은 색으로 욕보이는 얼룩이 보이니
스텝이 밟고 지나간 푸르고 검붉은 통계의 멍자국
그 춤
묶어놓아보려던 우리 애들이
많이들 다쳤어
날이 갈수록 투명해지는 결핍에 찬 침대를 뒹굴다
내가 나도 모르게 이쪽 팔에 새기던 것은
괴성을 지르는
내 정신의 맥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쿵
쿵
지진계가 남기고 간 서명
얼룩말에 새겨진 도망자의 무늬
애초에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계산기
정상이 아닌 상처들의 시뮬레이터
지진이 지진계의 촉을 잡고
자신을 적어내려가듯이
도망치는 포유류의 두려움이
얼룩말의 피부에 무늬지듯이
악수하는 손이 풀릴 때
상대방이 얼마나 매정하게 손을 빼버리는지
이 마주친 눈이 나를 어떻게 노려보는 것인지
서로 웃다가 한 쪽의 표정이 얼마나 빨리 굳어지는지
이것은 나의 망상인지
나도 결국엔 반드시 틀림없이
얼마나 차갑게 버림받을지
나는 지금 그걸 왜 생각하고 있는지
가늘게 떠는 애들의 정찰이
그새 벌써 제 인생으로 통계처리를 끝내고
찔리고 얻어터지고 다시 짓밟히는 설렘들로부터 도주할
생존의 무늬를 새겨 놓은 거야
시선을 좇는 것이 아이트래커라고 생각했겠지
그럼 그 눈은 무엇을 추적하고 있었게
애매하게 똑똑하다가
애매하게 세상의 진실을 엿보다가
세상은 결국 다 컴컴하게 얼어붙는다는 것을 알아버리고
바싹 당겨 앉은 허망의 얼굴을 보고
서로를 품어줄 단 하나의 따스한 난로를 찾아헤매다가
그 부드러운 가슴에조차
내 얼굴을 훑어보던 허망의 얼굴과 똑같이
눈이라는 게 달려 있고
그 눈이라는 것들은 예외가 없이
나를 셈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린 아이들은
다 이렇게 됐어
사랑을 믿었던 인간들의 숨구멍을 쳐버리던
시간에도 죽지 않고 살아서
매장 컵에 남은 얼음을 털어넣고
씹어먹고 다짐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 보리라
또다시 결연히 일어나봐도
다 이렇게 됐어 얘들아
분연히 일어섰던 날
내 밑으로 무엇이 빠져버렸는지
전혀 주저앉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날
무엇이 쑥 내려앉았는지
여기 다 찍혀 있잖아
아이트래커 성능 좋잖아
멋지잖아 과학
한심한 애정결핍들이 짓이겨지는 무늬를 구경해 보아
Main Photo by Tobii Dynavox
Bolmont, Mylene & Cacioppo, John & Cacioppo, Stephanie. (2014). Love Is in the Gaze: An Eye-Tracking Study of Love and Sexual Desire. Psychological science. 25. 10.1177/0956797614539706.